등록 : 2007.02.06 18:14
수정 : 2007.02.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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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기적의 도서관에서 엄마들은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각종 전시와 이벤트를 도맡는다. 사진 진해 기적의 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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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도서관 건립에서 운영까지 자원활동 앞장 지역명소로
아이들엔 자랑거리·엄마들도 자부심…생활 속 여성운동 싹
10년 전, 고향인 진해로 돌아간 여성학자 이이효재(84) 전 이화여대 교수가 최근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여성 운동이 개인 여성의 삶과 관련된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그는 매일 그 씨앗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내로라하는 우리나라의 노학자를 이토록이나 감동시킨 이들은 바로 진해의 ‘엄마들’이었다. 2003년 12월 진해 기적의 도서관이 완공되고 이곳은 사시사철 꽃보다 어여쁜 아이들의 웃음이 만발하는 진해의 명소가 됐다. 평일엔 400~500명, 주말엔 900~1000명이 도서관을 찾는다. 개관 뒤 이곳을 찾은 이용자 수는 31만5천여명에 이른다.
‘꽃 중의 꽃’은 바로 도서관 안 자원활동가 엄마들이다. 아이들은 이들 ‘엄마 선생님’한테서 남보다 먼저 ‘자리’ 차지하는 법이나 경쟁을 배우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나게 살 수 있다고 배운다. 도서관 운영위원장인 이 전 교수는 “아이들이 긴장 없이 즐길 수 있는 이곳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뭐냐”며 “자원활동가 엄마들이 기적을 일으킨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엄마 선생님’ 자원활동가는 30~50대까지 모두 90명. 모임은 자발적으로 생겼다. 처음 어린이 도서관 짓기 캠페인을 벌일 때부터였다. 엄마들이 나서서 자그마치 2만명의 시민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그 다음엔 책 정리였다. 도서관에서 하루에 들어가고 나가는 책은 평균 3000여권 정도로, 7명의 직원만으로는 손이 부족했다. 또다시 엄마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 뒤 프로그램이 생겼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활동가’가 된 엄마들은 인형극, 전시, 독서지도, 글짓기 교실, 북스타트, 유아놀이반 등을 7개 프로그램을 연다. 어린이 기자단은 이들의 조언을 받으며 거대 언론사들의 인터뷰 제안을 거절해왔던 이이효재 운영위원장과 대담하는 ‘특종’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적의 도서관 자원활동엔 중독성이 있다”고들 한다.
엄마들 인생도 180도 바뀌었다. 이종화(57) 관장은 “처음엔 내 아이에게만 책을 읽히려던 엄마들이 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저절로 엄마들이 모든 아이들을 제 자식 보듯 한다”고 말했다. ‘공동육아’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엄마들의 자신감과 아이들의 자부심이 더불어 컸다. 낯가림이 심해 ‘대인공포증’이 있던 한 엄마는 이제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진행한다. 대도시에 나가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엄마들도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진해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다. 홍미향 전 자원활동가 회장은 “아이들도 엄마가 ‘선생님’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17년 전 서울서 진해로 이사온 이경은(42) 자원활동가 회장은 “타지에서 와 낯설고 답답했는데 인형극을 하면서 너무 행복해졌다”며 “남편도 이렇게 재능 많은 사람을 집에 잡아놓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배동순(45) 북스타트 팀장은 “도서관을 통해 내 아이가 쉽게 배움의 길로 가고, 엄마들도 서로 친구가 되고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해/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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