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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7 18:40 수정 : 2007.03.28 18:42

여성학자 조주은(40)씨

여성학자 조주은(40)씨가 ‘어머니 급식 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공동대표를 해온 지도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아이들은 이미 급식 당번을 해줄 나이가 지날 만큼 컸지만, 그는 여전히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공포의 당번표’를 받아든 그는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었다. 당번은 시시때때로 돌아와 시어머니께 당번을 맡기기도 하고, 남편을 보내기도 했다. 그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주변에도 수두룩했다. 당번을 빠지는 취업모와 전업주부들은 반목을 거듭했고, 일당 2만원의 급식 도우미를 고용하는 정규직 취업모와 2만원이 일당인 비정규직 취업모 사이에도 벽이 있었다. 전쟁 같은 ‘현실’이었다.

최근 자신의 책 <페미니스트라는 낙인>(민연)을 펴내면서 이런 일화들을 빼놓지 않고 쓴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보수론자들이나 남성우월주의자들만 그와 이질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급식 당번 폐지 운동을 하자는 조 대표의 요구에 일부 여성단체 대표들조차 “생뚱맞다” “그보다 급하게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물러섰다. 안면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도 그의 제안에 공감하지 못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듯 2004년 직접 만든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 회원은 현재 570여명이다. 사무실도 없고, 눈치볼 ‘어른’도 없다. 조 대표는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헤쳐 모여’를 하는 이런 활동이 오히려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민단체들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통계자료를 만들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며) 정부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대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시민운동진영 전체를 걱정하는 여성운동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활 속 정치’에 민감한 페미니스트다. 급식당번제 같은 ‘쫀쫀한’ 일상의 문제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요즘도 학부모단체, 엔지오, 진보정당들은 학교급식의 직영화를 주장하지만 그는 반대다. 여기에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전제로 한 가족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너무 급진적인가? 당사자들에게는 현실이다. 실제로 급식 당번 폐지 모임에는 “엄마는 왜 우리 학교에 안 오느냐”는 아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장애인 어머니가 있고, 일을 내팽개치고 학교로 달려갈 수 없는 한부모 가정의 취업모도 있다. “왜 (어머니는 안 오고) 아버지가 오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머쓱해하는 ‘성평등 아버지’들도 속이 아프다. 엄마 없는 조손가정 아이들은 어떡하나? 그는 “(부모가 아닌) 국가가 관리·감독·책임을 강화하여 안심하고 급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이번 책에는 386 운동권 ‘여성’으로서 문제의식도 담았다. 그는 “386 운동권 출신 남편을 만난 뒤 일하랴 애키우랴 기를 다 써서 그런지 요새 암 같은 큰 병을 앓는 주변 여성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연애와 결혼에서 ‘동지적 결합’을 한 386세대 남성들은 아내에게 생계를 유지하는 데만 굳이 ‘동지’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한국여성연구소 가족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 운동을 하고,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기를 쓰고 산다. 그의 남편은? 아내와 문제의식을 공유해 학교 급식 당번에 나갔다가 계단 청소까지 하고 와선 “모멸감을 느꼈다”는 ‘경험담’을 아내에게 전해주는 급식당번 폐지 운동 열혈지지자다.

조 대표는 “남편은 ‘페미니스트 아내’가 ‘낙인’이라 주장하지만 나는 페미니스트 아내를 뒀다는 이유로 친구나 동료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지 않느냐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반박해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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