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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03 19:29 수정 : 2007.04.03 19:29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라틴 댄스 직장인반 자이브 클래스. 이번주엔 몸을 360도로 홱 돌리는 ‘아메리칸 스핀’이다. 남녀 합해 30여 명. 30대와 40대도 있지만 50대가 주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온 ‘오빠’들은 미처 넥타이를 풀지 못한 채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음악은 빠르고 경쾌해 두세 곡을 연달아 추고 나면 발에 땀이 날 지경이다. ‘폴어웨이 락’부터 위치를 바꿔가며 4분의 4박자 스텝을 놓치지 않으려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같은 스텝을 가르쳐도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뒤처지기 때문에 춤 선생님은 오빠들의 동작 연마에 훨씬 더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신다. 문제는 한두 명 예외를 제외하곤 오빠 댄서들의 몸이 물찬 제비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

남자는 몸을 가볍게 놀리면 안 된다는 공자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너무 경건하게 받아들인 때문일까? 스텝 하나 배울 때마다, 또는 파트너의 ‘언더암 턴’(서로 손을 잡은 채 위로 올리고 여성이 한바퀴 도는 것)을 도울 때마다 거의 식은땀 수준으로 쩔쩔매는 오빠들. 골반과 엉덩이를 민첩하게 스윙해야 하는 게 자이브의 속성인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도저히 진도를 못 따라와 내 스텝까지 구겨버리는 파트너. 짜증이 확 나려는 순간, 마주친 눈빛에 맘이 가라앉는다. 새로운 세계에 흥분한 소년의 천진난만 눈빛 말이다.

사실 그들은 용기 있는 오빠들이다. 남녀가 손잡고 추는 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랜 고정관념 때문에 그들은 춤추고 싶다는 말을 평생 한번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오빠들은 열정을 커밍아웃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물 한잔을 마시고 와 다시 스텝을 연마하신다. 깃을 세운 검정 폴로 티셔츠의 오빠는 칠판 앞에서 외래어투성이인 라틴 댄스 용어들을 외우느라 바쁘다.

‘자기만의 방’은 여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닌 모양. 자기를 포장하거나 위장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 바로 ‘자기만의 방’이라면 말이다. 머리숱 적어지고 뱃살 오른 몸으로 50대에 진입한 오빠들이 춤 속에서 은밀한 자기 공간을 누린다면 그건 축복이 아닐까? 오직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일벌 배역을 불평 없이 과묵하게 받아들인 그들,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의 무거움을, 그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은 듯, 그들은 즐겁게 흥분한다. 이 몰입의 한순간, 정말이지 춤을 향한 오빠들의 열정은 몸을 팽이처럼 굴리는 20대 비보이들보다 뜨거워 보인다. 오늘도 ‘록 앤 퀵 앤 퀵’을 외치며 몸을 던지는 은발의 초짜 라틴 댄서 오빠들, 멋있다.

칼럼니스트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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