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순(54)
|
여성운동 이철순씨 ‘당당한 미래를…’ 펴내
이철순(54·사진)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 대표는 우리나라 여성운동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3년 21살 때 전태일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가톨릭 노동청년회에서 처음 노동운동을 시작한 뒤 여성노동운동가로서 자신의 삶을 벼려왔다. 그때 어린 여성노동자들과 야학을 하며 “평생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한 다짐이지만 이는 종신서원과도 같아서 이 대표는 그 뒤 안락한 지위나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늘 여성노동자의 곁을 지켰다. 그는 지난해 모처럼 현장을 ‘이탈’했다. 9년 동안 대표로 일해온 한국여성노동자회를 그만두고 신학공부를 하러 아일랜드로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쉼이 아니었다. 최근 돌아온 그의 손엔 책이 한권 들려 있었다. 〈당당한 미래를 열어라〉(삶이 보이는 창). 세계 여성노동운동사이자 신자유주의에 연대해 맞서자는 큰 틀의 제안을 담은 책이다. 책 내용을 보면 그가 공부한 신학은 죽은 뒤에 만나게 될 천국보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는 이 책에다 19세기 서양 여성인권운동의 태동부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안 공동체 운동의 성과를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었다. 특히 이 책은 우리나라 운동가가 세계 여성노동운동의 흐름을 직접 발로 뛰어 경험한 뒤 펴낸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화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학자들의 얘기는 와닿지 않고…. 의무감이 있었죠.” 이 책은 이 대표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세계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필리핀에서 사회사업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성골롬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다. 88년부터 6년 동안은 홍콩의 아시아여성위원회(CAW)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일찍이 전지구적 노동시장의 변화를 몸소 지켜봤다.남미의 부자에 대한 나눔 요구와
유럽의 강제노동 없는 옷입기 소개
신자유주의 맞서 국제연대 제안 그의 눈에 나라마다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지만 여성노동자들은 늘 비슷한 문제에 시달렸다. 여성은 집안에서 고된 노동을 인정받지 못했고, 집밖에서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등으로 내몰렸다. 이 대표는 실제 현장에서 여성 차별이 전지구적, 보편적 상황임을 실감했다고 한다. “차별받지 않고 자랐다고 할지라도 여성의 지위는 공통적으로 남성 다음이에요. 제3세계 여성의 고통이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습니다.” 17년 동안 아시아와 남미 등 각 나라를 드나들며 이 대표는 여성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에 눈물 흘리는 한편, 세상을 바꾸려는 공동체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 시청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유지의 집을 ‘찍어’ 나눔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부재지주의 땅을 점령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브라질의 토지없는 농업노동자들의 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유럽에선 강제 노동 없는 ‘깨끗한 옷입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고, 공정무역운동이 활발했다. “공동체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봤어요. 그 시도 자체가 아름답고 고귀했어요. 하느님은 결코 지구를 멸망하게 두시지만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독실한 신앙인이자 수행자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자기발견과 삶 가꾸기에 도움을 줄 생각이다. “지금이 혼란의 시대이긴 하지만 영혼이 즐거워지는 건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아닌 내 가치관을 중심에 세울 때 스스로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나겠죠. 이대로 안 된다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나’를 지키는 길입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