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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24 19:13 수정 : 2007.04.24 19:13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몇 해 전 미국 여행길, 어느 도시의 저녁 풍경 하나. 촛불 켜진 레스토랑 창가의 2인용 식탁에 강아지를 앞에 앉히고 40대 남성이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헉! 솔로들에게 반려 동물이 늘어나는 미국다운 풍경이다. 뒤집어 보면 혼자 저녁밥 먹는 게 싫다는 뜻이겠지.

혼자 밥먹기의 결정판은 전업주부의 평일 점심이다. 청소, 설거지에 빨래를 끝낸 뒤 자신만을 위해 국 끓이고 생선 굽는 주부는 드물 터. 냉장고 속 나물과 김치 콩나물국, 달걀찜을 데우고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재활용 메뉴로 밥상을 차린다. 국그릇 밥그릇 따로 없이 한데 쏟아 참기름 한 방울, 고추장 한 숟갈로 비벼대기 일쑤. 비빔밥 한 숟갈에 느닷없이 목이 멘다. 한낮 아파트 단지는 고요하다. 혼자 밥 먹는 장면 속에 내가 있을 뿐.

살짝 서글픈 나홀로 점심을 모면해보자는 이심전심이 40대와 50대 전업주부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다. 백화점 식당가는 이들의 놀이터 겸 미팅장소. 친구 모임과 동창회를 핑계로 그들은 뷔페식당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주름잡는다. 모이니 분위기는 급상승하고 목소리는 커지기 마련.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놀고먹는 중년 부인 한량들로 그들을 정의해 버린 뒤에 말이다. 이건 부당하다. 집안일에서 반나절 해방되는 전업주부들의 나들이를 비생산적이고 소비적인 행태라며 단칼에 매도하는 것, 잔인한 시선 아닐까? 단체로 몰려다니는 그 맘, 전업주부 아니면 모른다. 집이라는 닫힌 공간을 직장으로 갖는 한계 때문에 고립감을 갖게 되는 전업주부 정서. 모여서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그들의 외로움을 비웃지 말라. 매운 함흥냉면 한 그릇을 먹든 풀코스 청요리를 먹든 떠들썩하게 점심을 먹으며 전업주부의 직업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 대찬성이다. 이건 퇴근 시간도 없는, 하루 24시간 스탠바이 근무에 주말이면 업무 강도가 더 빡세지는 직업 아닌가?

모여서 웃고 떠들며 실컷 놀자. 그리고 새로운 의제를 설정해 보자. 남편과 아이들과 집안일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년을 황금시대로 만들 궁리를 하는 거다. 뭔가 새로 배우자. 배운 건 써먹자. 기타는 어떨까? 구민회관이나 동네 체육관 프로그램들도 빵빵해졌다. 잘 고르면 살도 빼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네 마라톤 클럽은 회원을 상시 모집한다. 또 눈을 옆으로 돌리면 안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뿐 아니라 여성복지관, 장애인복지관, 청소년복지관까지 늘어난 기관·단체들이 섬세하고 따뜻한 엄마 손 도우미를 기다리고 있다. 뭔가 써보고 싶다면 자서전 쓰기에 도전할 수도 있다. 새로운 열정을 찾자. 중년시대, 우리 스스로가 디자이너다.

칼럼니스트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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