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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4 19:50 수정 : 2007.05.14 19:50

박어진의 여성살이

박어진의 여성살이 /

친구 박경복은 쌍둥이 아들의 엄마다. 재외공관 무관인 남편과 중동의 어느 도시에 산다. 처녀 적 교사 생활을 했고 공군 전투기 조종사를 만나 결혼했다. 겉보기에 평범한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대개 그렇듯 경복씨는 사실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다. 그건 손님을 대접하는 재능이다. 누구든 그 집에서 밥 한 끼를 먹고 나면 즉각 그녀의 왕팬이 된다. 다시 불러주길 목 빼고 기다린다. 못 참을 지경이면 그 집밥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댄다. 그 집에 무슨 호화 메뉴가 있어서? 전혀 아니다. 스테이크 디너도 잘 차려내지만 가자미 구이에 양념장 하나 달랑 곁들여 내도 그녀의 식탁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우선 손님의 나이와 취향, 건강 상태를 고려해 메뉴를 정하고 그릇을 고른다. 경복씨가 차린 식탁은 거의 예술이다. 식탁보나 매트, 거기다 테이블 냅킨까지 그녀의 색상과 소재 선택 안목에 모두들 신음한다. 샐러드나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까지 푸드 스타일링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음식 솜씨나 테이블 세팅만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쉽게 감동하는 미덕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 남성들을? 경복씨의 진짜 재능은 손님을 맞이하는 그녀의 마음 자세다. 누구든 남의 집에 가면 안주인의 눈치를 보게 되는 법. 활짝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안주인의 자세를 경복씨는 애써 갖출 필요가 없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여럿 불러 밥 먹이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손님 옆에 붙어 앉아 그녀는 음식의 조리 과정을 홍보하고 향신료나 양념의 조합 공식까지 발표 한다. 집에 온 모든 이를 진심으로 반기고 음식을 정성껏 권하는 경복씨. 손님 숫자가 많지 않게 미리 신경을 쓴다. 숫자가 너무 많으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없기 때문. 그러니 손님들이 우글댈 수 밖에. 그 곳 무관 댁에서 밥 먹고 귀국하면 승진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까지 무성하다니 말이다. 여주인의 식탁에 감동한 손님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열 살짜리 소년은 들고 온 오카리나로 즉석 연주회를 자청하고, 목사님 일행은 ‘봉투’를 건넸다나.

사람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경복씨의 재능은 국민총생산에 포함 되지 않는 능력이다. 그래서 저평가되기 일쑤인 능력 말이다. 그러나 경복씨는 멈추지 않는다. 그 집 문턱을 들어가는 순간 모두는 계급장 뗀 채로 안주인의 VIP 신분이 된다니. 정말이지 세상의 가장 귀한 것들은 모두 무료다. 햇빛, 공기, 비와 웃음처럼. 경복씨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샐러드 한 접시에도 우정 소스를 듬뿍 뿌려서일까? 경복씨네 집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언제나 중얼거린다. “대한민국엔 왜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많은 거야?”

컬럼니스트/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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