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8 21:00
수정 : 2007.05.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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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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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
경주 시댁에 내려간 김에 오래 아픈 친구 딸 이야기를 한다. 시어머니께서 이웃마을 사는 소동댁한테 가보자고 하신다. 전화 연락 없이 무작정 갔더니 외양간의 소 한 마리가 아는 척을 한다. 소리쳐 부르자 뒤 언덕 마늘밭을 매던 소동댁 아주머니가 웃는 얼굴로 나타난다. 흙 묻은 손 툭툭 털고 마당 댓돌에 마주 앉는다. 60대후반 정도일까? 아픈 아이의 생년월일을 듣더니 금세 어두워지는 얼굴.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조짐을 읽으신 모양이다.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전문가적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큰 시누이 남편도, 막내 시누이 남편도 얼마 전 소동댁 아주머니의 신세를 졌다. 느닷없이, 별 이유 없이 발병한 경우, 소동댁 아주머니의 예리한 분석이 사태 해결에 엄청 도움이 된다, 이건 우리 집안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무당인 소동댁 아주머니의 전공은 온갖 질병. 나무를 베어 낸 후 갑자기 쓰러진 사람이나 화분의 흙을 새로 담아오고 난 후 열이 오르는 경우, 소동댁 아주머니의 도움은 결정적이다. 적절한 처방과 퍼포먼스를 벌여 목신이나 토신과 의사소통을 하는 게 그녀의 몫. 몇 해 전 시외삼촌께서 뇌혈관 파열로 뇌수술 선고를 받으셨을 때 ‘수술할 필요 없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자신이 틀릴 경우 ‘노 개런티’를 불사하겠다는 그녀의 카리스마에 가족 모두는 압도되었다. 결과는 대박, 뇌혈관의 출혈이 멈춰 담당의사는 수술을 취소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에 서있는 소동댁의 활약은 이렇듯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난다.
이제 소동댁의 고객 명단은 마을 환자들과 경주 시내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 서울에까지 이른다. 그들에게 온갖 컨설팅을 제공하는 틈틈이 소를 키우고 채소밭 농사를 짓는, ‘투 잡’ 현역이기도 한 소동댁. 그녀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들도 어릴 적 잃었다. 외동딸은 결혼해 경주 시내에 산다. 별 연고가 없는 마을 안팎의 경조사나 경로잔치에 팍팍 부조금을 내는 건 소동댁의 또다른 면모. 마을 공동체의 어엿한 일원으로서 존중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모두가 칭송하는 그녀의 또 하나 특징은 바로 고무줄 개런티.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객에겐 그저 만원의 상담료를 받고 수습책을 제시한다. 굳이 고비용 호화굿판을 제안하지도 않는다. 액수 적은 사례비에도 흔쾌히 일을 맡는 ‘고스트 위스퍼러.’ 그건 아마도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은 렌털’임을 이미 꿰뚫어 보는 때문이 아닐까? 아픈 이를 위로하고 아픈 이 수발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심리치료사이기도 한 영매 소동댁. 그녀의 들꽃 생애가 그윽하게 저물어 간다.
칼럼니스트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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