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18 19:06
수정 : 2007.06.1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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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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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
30대 여성들 모임에 끼어 앉으니 나홀로 육아 전쟁의 처절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한밤 중 울어대는 한 살배기 때문에 몇 달 째 잠을 못자 돌아버릴 것 같다는 엄마. 밥 한 번 먹는데 두 시간씩 ‘개기는’ 세 살배기를 한바탕 패주었다는 엄마.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애증이 엇갈린다는 고백이다. 가와사키병에다 설사가 겹친 아이 기저귀를 밤새 스무 번 갈고 물로 씻기다 코피를 쏟았다는 엄마. 새삼 엄마라는 직업의 험난함을 목격한다.
서른에 첫 아이를 낳고 나는 절망했다. 친정엄마가 아기를 맡아 주지 않으면 당장 출근이 불가능한 월급쟁이 시절이었으니. 자기 앞가림 확실하게 하는 똑순이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내가 부르짖던 독립은 허구였던 것이다. 일하는 여자가 아이를 기르기 힘든 나라 시스템을 규탄해 봤지만 발등의 불을 끄는 게 다급했다. 거의 비굴 모드로 친정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나는 갑자기 겸손해졌다. 그동안의 잘난 척, 강한 척, 똑똑한 척은 끝장났다. 주중엔 걸어서 10분 거리 친정에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며 아이를 만나다 주말엔 데려오길 거의 5년. 아이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삼촌과 외숙모, 이모들의 손에서 명랑하게 자랐다. 아이를 키워낸 건 결국 생모 보다는 가족공동체. 나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며 주위 모든 이에게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존재의 실상’과 대면하게 된 계기다.
아파트 핵가족 속 엄마들은 아이와 강도 높은 1대1 관계를 갖는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단순 업무를 1년 365일 반복하면서. 아기가 젖을 떼자마자 이유식 레시피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당근은 잘게 썰어 요리 속에 숨긴다. 빨간 토마토를 갈아 바치고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은 엄마표 요리로 날마다 극진히 그들을 섬긴다. 지금 “엄마가 세상에서 젤 좋아”를 외치는 녀석들은 10년 안에 다가올 사춘기를 맞아 엄마로부터 분리 독립 투쟁에 나설 것이다. 또 결혼과 함께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 될 것이다. 자식 짝사랑은 엄마의 운명. 멀어져 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약간의 배신감을 맛보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거기다 전업주부직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왜 그리 야박한지?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 여기, 혼신의 힘을 다해 엄마의 직무에 임한다. 아이를 최우선순위로 삼되 엄마로서 업적을 생색내지 않는 ‘그냥 엄마’들. 놀랍지 않은가? 내 눈엔 그들이 모두 수행자들로 보인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엄마 내공의 경지. 아이를 기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함양하게 되는 인내심은 또 어떻고?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아기 키우기, 정말 고강도 수행 프로그램 아닌가?
박어진 칼럼니스트 /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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