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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30 19:19 수정 : 2007.07.31 11:09

한국여성건설인협회 회원들은 이런 작은 턱부터 휠체어가 오를 수 있도록 없앨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왼쪽부터 김정선 한국여성건설인협회 회장, 이원아 모자익 환경디자인 소장, 류전희 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여성건축인들 ‘약자 배려한 도시’ 만들기

유모차 이동·화장실 사용 쉽게
장벽 없애고 안전성 높인 설계
지자체 사업으로 현실화 잇따라

서울시의 올해 주요 사업은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보도 턱을 낮추고 여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갖출 예정이다. 김포시는 양촌지구에 들어서는 새도시를 ‘여성친화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고, 영월군은 여성가족부와 함께 가족친화형 마을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11일 ‘가족친화형 혁신도시 건설을 위한 시민단체협의회’가 닻을 올렸다.

‘여성친화도시’ 또는 ‘가족친화도시’를 향한 지방자치단체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이들 움직임 뒤에는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장 김정선)가 있다. 한국여성건설인협회는 공공기관 등의 건설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며 공공 건축 및 도시 설계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관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온 여성 건설인들이 이를 고쳐나가야겠다는 데 뜻을 모아 2002년 12월 탄생했다.

협회 회원들은 “공대 건물에 여성 화장실이 없거나 하나만 있었던” 대학 시절을 거쳐, 자녀를 키우고 나이든 부모를 모시면서 여성이 겪게 되는 불편함을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체험한 386세대가 주를 이룬다. 관련 분야 자격증이 있고 5년 이상 활동해야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원 150여명 대부분은 아줌마다.

“건축구조기술사 시험 원서를 냈더니, ‘이번 회 여자 접수는 처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김정선 회장이나 “대학원생 시절 아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화장실이 없어 교수님 사무실에 찾아가 아이를 씻겼다”고 회고하는 이원아 모자익 환경디자인 소장, 그리고 교통사고로 다친 자녀의 휠체어를 밀며 도로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류전희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 등이 이러한 ‘여성친화도시’ 설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20세기 서구 근대건축의 영향을 받은 우리 도시들은 정상적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짐을 들거나 다쳐서 접근성에 제한을 받는 사람이나, 어머니와 아이 등 다양한 신체조건을 가진 이를 배제하지 않는 도시 설계가 필요합니다.”

김 회장이 말하는 ‘여성친화도시’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여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도시다. 그는 “아이를 임신하고, 유모차를 끌고 장바구니를 들고, 몸이 불편한 가족을 뒷바라지 하는 등 돌봄 노동에 익숙한 여성들은 도시공간 내에서 겪는 스펙트럼이 넓어 좀더 쉽게 불편함을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협회 회원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도시의 여성친화성은 여전히 낮다. 개별 건축물은 장애인이나 여성 등과 관련한 기준에 따라 지어지고 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이동 경로는 문제투성이라는 것이다. “여성친화도시는 모두를 배려한 건축물들을 연결짓는 작업을 통해 장벽이 없는(barrier-free) 도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여성친화형 설계 가운데 하나는 안전 문제다. 공원의 경우 나무들이 범죄자들이 숨을 곳을 제공하지 않게 높이를 조절하며, 놀이터는 주택단지 중앙에 놓아 우범지대화를 막고, 지하주차장은 조명을 밝게 하는 등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개념이 철저히 적용된다. 류 교수는 “공원 등의 공중화장실 설계 때 여자화장실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답시고 뒤쪽에 둬 으슥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여성의 마음을 안다면 이런 ‘배려’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들이 그냥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협회는 여성과 도시를 주제로 매년 두 차례 세미나를 열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 류전희 교수, 이원아 소장 등 몇몇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여성개발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여성친화도시의 방향과 과제’는 서울시의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로 현실화됐고, 다른 지자체에도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여성가족부가 꾸리는 가족친화형 마을 사업의 자문에도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지자체나 정부 부처의 위원회, 공공단체 등 건설과 관련된 각종 심의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운데뜰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단지(왼쪽)와 아파트 복도를 활용한 소규모 정원을 갖춘 독일 브레멘의 미혼모를 위한 임대아파트. 이원아 모자익 환경디자인 소장 제공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이원아 소장은 2004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공동세탁시설 등을 잘 갖춘 미혼모를 위한 임대아파트가 인상깊었다고 말한다. “패턴화된 가족뿐 아니라, 미혼모 가족까지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죠.”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배려가 담긴 열린 공간을 만들겠다는 게 ‘아줌마 건설인’들의 꿈이다.

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여성친화도시= 1970년대에 북미 여성운동가들이 내건 개념으로 안전성, 접근성, 편리성, 쾌적성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81년 캐나다에서 일어난 ‘밤길 안전하게 다니기’ 캠페인을 비롯, 80~90년대 문제제기 차원의 캠페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90년대에는 여성들이 공공공간에서 보다 안전하게, 적극적으로 활동활 수 있도록 정책적, 사회경제적 시책들을 시행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92년 리우 환경선언 뒤 지속가능한 개발이 의제로 떠오르면서 여성, 장애인, 아동 등 소외된 계층의 거주권 확보라는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94년 ‘도시여성을 위한 유럽선언’은 그 동안 여성이 도시의 사용자로서뿐 아니라 계획자로서도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고, 본격적으로 여성성을 고려한 도시를 모색하려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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