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딸이자 조선대 미대 교수인 한선주씨와 할머니 화가 박우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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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까워…그리고 싶어 못 견디겠어”
당뇨에 대장암 수술…치매 막으려 시작황진이·산나리·호랑이…이면지에 ‘쓱쓱’
권유한 미대 교수 막내딸도 재능 감탄 박우대 할머니는 여든 여섯. 여든 둘에 그림을 시작해 네 해 만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름 석자 앞에 ‘화가’라는 직함을 정식으로 달았다. 인터뷰 하자는 데가 많아 좀 바쁘시다. “눈에 띄는 대로 다 그려요.” 사극에 나오는 황진이, 반지 세레모니 안정환, 근엄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 인물화, 산나리 도라지 국화에 나비와 거미가 어울린 초충도, 꿩 호랑이 원앙 돼지 토끼 등 동물화…. 비구상만 빼고 전천후 화가다. 잡지나 신문 등의 기사와 광고에서 소재를 구한다. 곱게 그려진 그림들을 뒤집으면 영락없이 신문에 낀 광고지, 기업체 달력이다. 손녀들이 딸의 것을 사면서 함께 사서 선물한 스케치북이 수북해도 버리기에는 아까운 자투리 종이가 쉽게 손에 잡힌다.
한번은 스케치북을 본 성당 신부님이 “할머니는 화가시네요”라고 하더란다. 어떤 이는 “화가는 무슨 화가?” 라며 시샘을 하고 어떤이는 늙마에 좋은 취미라며 부러워했다. 다섯째 딸은 이 참에 전시회를 열어 어머니를 화가로 데뷔시킨 것이다. 한 관객이 그림을 둘러보고 “우리 할머니한테도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다드려야지” 하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양로원에서 누워있거나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워요.” 2남6녀를 잘 키워낸 할머니 화가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해 병원에서는 눈을 가급적 쓰지말라고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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