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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31 18:15 수정 : 2007.07.31 18:15

다섯째 딸이자 조선대 미대 교수인 한선주씨와 할머니 화가 박우대씨

“시간이 아까워…그리고 싶어 못 견디겠어”

당뇨에 대장암 수술…치매 막으려 시작
황진이·산나리·호랑이…이면지에 ‘쓱쓱’
권유한 미대 교수 막내딸도 재능 감탄

박우대 할머니는 여든 여섯. 여든 둘에 그림을 시작해 네 해 만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름 석자 앞에 ‘화가’라는 직함을 정식으로 달았다. 인터뷰 하자는 데가 많아 좀 바쁘시다.

“눈에 띄는 대로 다 그려요.”

사극에 나오는 황진이, 반지 세레모니 안정환, 근엄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 인물화, 산나리 도라지 국화에 나비와 거미가 어울린 초충도, 꿩 호랑이 원앙 돼지 토끼 등 동물화…. 비구상만 빼고 전천후 화가다.

잡지나 신문 등의 기사와 광고에서 소재를 구한다. 곱게 그려진 그림들을 뒤집으면 영락없이 신문에 낀 광고지, 기업체 달력이다. 손녀들이 딸의 것을 사면서 함께 사서 선물한 스케치북이 수북해도 버리기에는 아까운 자투리 종이가 쉽게 손에 잡힌다.

할머니는 멋대로 번지는 수채물감보다는 그린대로 그려지는 색연필을 고집한다. 그림의 크기 역시 에이4가 가장 만만하다. 28일부터 8월4일까지 인사동 크라프트 아원(02-738-3482)에서 여는 ‘박우대 할머니 그림전’에 걸린 그림들 대부분이 그렇다. 동물가족에서는 먹이를 먹이는 모성이 드러나고, 인물화의 경우 특징적인 부분을 잘 잡아내 대상과 흡사하다. 요즘 들어 장르를 넓히고 있다. 세 살 증손녀와 놀 양으로 만든 호랑이 토끼 등 종이공예, 예술의전당에 놀러갔다가 보고와 만든 ‘까치밥 달린 감나무’, 유리병에 꽂은 뿌리가 숭숭 난 양파그림 등.

할머니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2003년 대장암 수술 직후. 오랜 지병인 당뇨에다 직장암 수술 후유증으로 치매가 염려됐다. 다섯째 딸이자 조선대 미대 교수인 한선주씨가 그림도구 일습을 사왔다. 처음에는 ‘안 한다’고 버티다가 딸의 성의가 고마워 색연필을 잡았다. 일주일 뒤에 그림을 본 딸과 손주들도 깜짝 놀랐다. 평소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초 기르기를 낙으로 삼았을 뿐 그림 근처도 얼씬도 않던 분의 그림치고 아주 훌륭했다. 주위의 격려 속에 솜씨는 일취월장해, 명절이나 자녀들 기념일이면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카드를 만들어 보낼 정도가 됐다. 작품 스크랩이 쌓여갔다.


한번은 스케치북을 본 성당 신부님이 “할머니는 화가시네요”라고 하더란다. 어떤 이는 “화가는 무슨 화가?” 라며 시샘을 하고 어떤이는 늙마에 좋은 취미라며 부러워했다. 다섯째 딸은 이 참에 전시회를 열어 어머니를 화가로 데뷔시킨 것이다. 한 관객이 그림을 둘러보고 “우리 할머니한테도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사다드려야지” 하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양로원에서 누워있거나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워요.”

2남6녀를 잘 키워낸 할머니 화가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해 병원에서는 눈을 가급적 쓰지말라고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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