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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6 19:44 수정 : 2007.11.02 18:35

무용치료사 한천지영(31·사진 가운데)

몸으로 분노·억압 풀어내는 ‘무용치료’
성폭력 피해 등 정신적 외상에 도움
“나 돌보며 타인과 교감하니 즐거워”

“오늘 하루를 몸으로 표현해 보세요.” 한천지영(31·사진 가운데)씨의 말에 사람들은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 전체를 사용해서 달리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힘들게 주워담는 사람도 있다. 누워서 나른하게 구르는 사람, 빨리 달리다가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는 사람…. 각자 표현이 끝나자 돌아가면서 서로의 하루를 따라해 본다.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리듬을 넣었을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세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무용·동작치료’(Dance/Movement Therapy)의 현장이다. 미술, 음악치료와 같은 예술 치료의 한 갈래로 흔히 ‘무용 치료’, ‘댄스세라피’로 불린다. 한씨는 “이성적 측면이 강조되는 언어상담은 자기 방어기제로 인한 거부반응이나, 자기검열로 인한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용치료는 자신의 몸을 표현 도구로 삼는 만큼 자기표현적 성격이 강해, 정신적 외상이 있는 환자나 성폭력 생존자 등의 치료에 폭넓게 활용된다. 국내에는 소개된 지 10년 남짓이라 상대적으로 연구자가 많지 않고 각자 관심을 갖는 분야도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서도 한씨는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무용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체로 여성과 어린이 같은 약자나 소수자들이 자신의 욕구나 결핍 등을 말로 드러내지 못한 채 무의식에 담아둔다”는 그는, 이런 누적된 결핍이 몸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무용치료를 할 때 골반을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없는 존재처럼 여기고 싶어하죠. 무용치료는 이런 억압을 스스로 인식하게끔 돕습니다.”

특히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무용치료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나아가 자신을 긍정하는 수단이다. “수강생들 중에서 유난히 손을 쓰지 않았던 분이 계셨어요. 손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니, ‘손이 모래에 뻑뻑하게 묻힌 느낌’이라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아온 상처가 있었고, 그것이 ‘여자 손이 참 못났다’는 어머니의 말로 맺혀 있었던 거예요.”

다른 수강생들은 그에게 다가가 손에 모래를 털어주고, 물을 부어주는 동작을 취하며 위로했다. 이렇듯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치료에서는 타인과의 동작을 통한 관계맺기도 중요한 요소다. 수강생인 김현수(24·대학생)씨는 “내 몸을 움직이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한다.

여성주의 단체인 ‘언니네’ 활동가였던 한씨는 “여성과 치유, 관계맺기의 테마를 공유하는” 무용치료에 관심을 갖고 2006년 서울여대 특수치료 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무용동작치료 및 공연 커뮤니티인 이다모션스쿨(cafe.daum.net/idamotion)을 운영하며 성매매 탈출 청소녀를 위한 늘푸른센터의 지원프로젝트, 인천 지역 공부방 ‘나눔의 집’ 등에서 무용치료를 통한 치유활동은 물론 안티페스티벌 공연, 여성의 전화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길거리 퍼포먼스 등 여성을 위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왔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으면 춤을 추지 못해요.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한씨의 말이다.

글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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