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20 18:29
수정 : 2007.08.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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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효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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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여성살이 /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수업 중에 한 아이가 “이혼한 여자들은 어쩐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 그래서 “만약 학생이 이혼한 집 아이라면 그런 사회의 시선이 싫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그 애의 대답은 “우리집은 행복하니까 괜찮아요”였다. 이 아이는 자신이 결코 그런 상황에 처할 일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에 서기를 거부하며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위의 아이처럼 한국 사회가 총체적인 ‘공감 능력 부족 사태’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타인의 존재에 대해,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응대하게 되었다. 사건이 터지고 피랍자들에게 ‘유서 쓰고 갔으니 거기서 죽어라’ 등의 폭력적인 말들이 댓글로 가득 달렸다. 심하게는 그들을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이슬람권 사이트에 올린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공개되어 충격을 더한다.
피랍자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방어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 역시 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폭력적 선교 방식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죽인 것도 강간한 것도 아니다. 함부로 다루어져도 되는 목숨이란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조차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타인의 고통에 그토록 둔감한 사람들에게 문제제기하고 싶다. 자신은 결코 그 위치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공감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비겁함과 안일함을 비판하고 싶다. 자신은 안전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익명성을 가장해 다수의 힘을 업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잔인함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나마 가장 최대한 공감한다는 것이 ‘만약 그곳에 당신 가족이 있다고 생각해봐라’라는 호소문이라니 씁쓸하다. 당신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없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가? 그저 ‘인간’으로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는가?
최근 이랜드 노조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빚어진 불편함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은 결코 그 자리에 서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자신의 불편함에 너무 민감하고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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