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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2 14:48 수정 : 2007.11.22 15:04

오순이님 블로그 첫 화면.

<인터넷한겨레> 필통 오순이씨의 ‘독일에서 살고지고’
하룻만에 1만명 이상 다녀가, 댓글도 90여개 이상 붙어

출산 직전 뱃속의 아이를 사산한 한국 동포여성의 출산기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독일 산 지 7년된 아줌씨’라고 밝힌, 독일 거주 한국동포 오순이(본명 이은지)씨는 21일 <인터넷한겨레> 필통(블로그·[‘독일에서 살고지고’ 블로그 바로가기])에 다섯 차례에 걸쳐 ‘출산기’를 올렸다. 이 출산기는 “예쁜 아기를 낳느라, 죽을 뻔했어요….”식의 출산기가 아니었다. 오씨는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태아가 사망하는 비극을 경험했고, 자식을 태중에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오씨가 뱃속의 아이 ‘앵두’에게서 이상 징후를 느낀 것은 출산예정일을 9일 앞둔 오후였다.

“침대에 누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앵두가 오늘 하루 종일 안 움직인 것 같다. 예정일 9일을 남겨뒀으니 태동이 줄 만도 하지만 어째 너무 고요하다. 보통 침대에 누워 왼쪽으로 몸을 누이면 앵두가 손가락으로 왼쪽을 콕콕 찌르는데 그게 안 느껴졌다. 오른쪽도, 똑바로 누워도 마찬가지다.…”

오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독일인 남편 ‘방만구’씨와 함께 밤 11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부인과로 향했다. 조산사가 배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지만, 아이의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철딱서니없게도 아기가 죽었을까 하는 생각보단 방만구씨를 향해?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내가 뭐 괜히 그러는 줄 알았어?’ 하고 고소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내 생각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 분명 앵두가 딸꾹질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 그새 죽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다 키운 태아가 이렇게 쉽게 죽다니. 말도 안 된다. … 의사는 내가 물어볼 때 까지 입을 떼지 않고 죽은 게 확실해 보이는데도 계속 초음파만 본다.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아기 심장이 멎었나요?”
“그런 것 같네요.”
“다시 뛸 확률이 1%도 안 되나요?”
“이럴 경우 다시 뛸 확률은 100% 없어요.”

“나는 그 상황에서 어쩌면 그렇게 담당하게 의사와 얘기할 수 있었을까. 정신이 참 맑았다. 그럼 이럴 경우 출산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언제 다시 와야 하는지, 산후조리와 입원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조목조목 물어보았다. 애가 죽은 이 마당에 맨정신으로. 의사가 도리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밖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방만구씨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막혔던 심장이 터질 것처럼 흐느낌이 튀어나왔고 눈물이 솟았다. 마치 길잃은 아이가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꾹 참다 엄마를 만났을 때 터지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듯이. 방만구씨가 그렇게 우는 것도 생전 처음보았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울고있는 덩치 큰 우리 남편이 너무 불쌍해보여 또 울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초음파실에서 오열하다 내일 오전에 유도분만하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오씨는 유도분만제를 맞고 20시간의 진통 끝에 앵두를 낳았다. 3.2킬로그램 45센티의 날씬한 여아. 오씨의 글에 의하면, “20주 때 벌써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젖 빠는 연습을 했고 27주부터 머리를 아래로 향해 엄마를 걱정시킨 적이 적이 없었던” 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앵두’의 목과 다리엔 탯줄이 감겨 있었다. 심장은 이미 멈췄고,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뭘 그리 오래 망설이느라고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이나 살았니. 떠날 거라면 차라리 다른 아기들처럼 12주 이전에 떠날 일이지. 엄마 아빠를 10개월이나 들뜨게 만들어 놓고 왜 지금. … 네가 엄마 아빠가 싫어서 떠났다면 우리도 세상에 나온 너를 쳐다보지도 않고 밀어내버릴 거야. 그리고 엄마 몸이 임신 전 상태로 돌아오면 지난 10개월 동안의 일을 말짱 없었던 일처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거야.”

사산의 충격과 고통, 아이 향한 모성애 담담히 적어…누리꾼 ‘감동’

충격적 이야기를 적은 오씨의 블로그에 누리꾼의 관심이 쏠렸다. 호기심과 화제를 넘어선 공감과 감동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사산의 충격과 고통, 아이를 향한 모성애가 진솔하게 녹아 있어서다. <인터넷한겨레>에 올라온 오씨의 글은 하룻 만에 1만명 이상 봤다. 댓글도 90여개가 붙었다. “글을 읽고 눈물이 났다”며 오씨를 위로하고, 하늘나라로 간 앵두의 명복을 비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오씨는 입덧을 시작한 지난 5월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임신·출산기를 연재해 왔다.

“오순이님도 앵두도 너무 고생이 많았습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두 사람이 다 대견하고 안쓰러워서.”(yejinism)

“지나가다 우연히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만, 정말 슬픈 일입니다.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아무쪼록 기운내시고. 이 슬픔을 모두 덮을 수 있는 더 큰 행복이 두 분 앞길에 내리길 기도합니다.”(oxy)

“몇 번 읽어도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남편 방만구씨의 아픔에 소주 한잔 부어드립니다. 슬픔을 잘 극복하셔서 멀리 않은 시일 내에 좋은 소식 전해주시길 기원합니다.”(좋은비)

자신의 사산 경험담을 토대로 “뒤에 웃을 날 있을 테니,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댓글도 올라왔다.

“많이 힘들었을 앵두를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집니다. 저도 4년 전에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한 달 간 뱃속에 넣고 다녔던. 몸도 마음도 쾌차하시길 바랍니다.”(바람아래길)

“저희 첫아이는 일주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답니다. 인생이라는 것, 슬픈 날이 있다면 반드시 좋은날도 온다는 것 알고 계시죠? 이제 님의 인생에 행복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늘 앵두 위해서 기도하시고 몸 추스르시는 대로 빨리 임신하세요.”(빛과소금)

“저희 누나도 예정일 3일 남겨두고 아기 심장이 멈췄다고 진단 받았었습니다. 갑자기 누나 생각이 나네요. 유도분만 후 아기 얼굴은 보지 마세요. 누나가 죽은 아기 얼굴을 보고 더 오랜 시간, 아니 앞으로도 영원하겠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천국에서 뛰고 있을 아기를 위해 기도합니다.”(울아기)

“작년에 저도 그랬습니다. 잘못된 줄도 모르고 한 달을. 그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소리는, 심장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같이 손잡아 드릴게요. 같이 울어드릴게요.”(꽃분)

오씨는 1999년부터 결혼생활을 했지만, 2세 계획을 미루다 서른일곱살이 된 올해에 이르러 뒤늦은 계획임신을 했다. 입덧을 시작한 지난 5월부터 <인터넷한겨레> 자신의 블로그에 ‘S라인을 위한 패션제안’ ‘나의 노래하는 태교’ 등의 글을 통해 아이를 기다리는 임신부의 설렘과 임신의 기쁨, 출산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등을 진솔하게 게재해 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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