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이런 편견을 허물고자 지난 16일 ‘이혼, 자녀는 이렇게 생각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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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부모 이혼후 더 행복”
실태조사 결과도 주장 뒷받침
“피해자 낙인이 오히려 상처”
이혼가정 자녀들이 “우리는 불쌍하지 않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혼 가정의 자녀는 불행하며 따라서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이런 편견을 허물고자 지난 16일 ‘이혼, 자녀는 이렇게 생각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사진). 토론회에서 미성년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이 쏟아낸 이야기는 이러한 편견이 오히려 자녀들에게 더 큰 괴로움과 상처가 되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혼을 대하는 주변의 반응 때문에 상처 입었던 것들이 커요. 교무실에서 ‘너네 어머니 이혼하셨구나’ 같은 말을 듣거나, 친척들이 볼 때마다 ‘저런 불쌍한 아이’, ‘애엄마 때문에 애만 불쌍하다’ 등의 말들은 내가 당연히 절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걸 보면 이혼가정 자녀들이 부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기만을 사회가 기대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여·29살, 초등학교 때 부모 이혼)
“이혼 뒤에 우리 가정은 더욱 행복해졌습니다. 이혼 전 어머니는 술에 취해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쳤다가 우리들 때문에 다시 들어오고 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주변에선 이혼가정 아이들은 방황하느라 대학도 못 가고, 전과자처럼 취직도 어렵다고들 하면서 자식을 생각해서 참고 살라고 했지요. 하지만 과연 그런 가정에서 우리가 행복했을까요?” (남·31살, 19살 때 부모 이혼)
“단지 이혼 때문에 부모한테 집착하고 정서불안증을 느낀다는 건 이혼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이혼 직후 자녀는 부모를 독점하고 싶어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건 어느 가정이나 마찬가지죠. 또 부모와 함께 살아도 부모가 자녀한테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자녀가 불안과 상실감을 느끼긴 마찬가지 아닌가요?” (여·30살, 유아기에 부모 이혼)
이런 흐름은 지난해 6~8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이혼부모 3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혼 후 자녀양육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뒷받침된다. 이 조사에서 이혼가정 자녀의 ‘생활태도가 나아졌다’, ‘친구와의 관계가 나아졌다’는 응답이 각각 69.8%와 75.6%로 나타났다. 이혼 후 부모와 자녀 사이 관계가 오히려 좋아졌다는 응답도 80.6%였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연구실장은 〈한겨레〉의 물음에 “적응 기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부모의 갈등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기도 한다”며 “이혼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이혼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 한부모를 보조하는 등 자녀의 어려움을 줄이는 실질적 방향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가족담당은 “‘이혼이 자녀에게 상처를 남긴다’거나 ‘이혼의 최대 피해자는 자녀’라는 말은 일면 사실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자녀를 피해자로 여기는 시선이 오히려 아이들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며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된 왜곡된 담론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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