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3 21:16
수정 : 2007.12.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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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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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여성살이/
유럽에서 한 달, 미국에서 세 달을 보내고 돌아오니 한 해의 끝이다. 올해는 가히 내 인생의 꽃피는 춘삼월, 화양연화였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내 집 거울 앞에 섰더니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낭만적 소회를 무찌르는 현실적 고민이 파고든다. 그 고민이란 두발자유화를 위한 지난한 투쟁과 관련되어 있다고 무리하게 엮어 주장하는 바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스펠 합창단이 유명한 글라이드 센터(Glide Center)란 곳을 갔었다. 교회이기도 하고 교회가 아니기도 한, 자신이 믿는 혹은 믿을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향해 하고 싶은 방식으로 경배를 드리는 곳이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교회 관계자로 사료되는 분들이 크리넥스 통을 들고 청중 사이를 오갔다. 무에 그리 울 일이 있을라고? 나, 그 날 펑펑 울었다. 크리넥스를 예비하지 않은 벌로 스카프로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올해 처음 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이자 내 생애 가장 감동적인 캐롤이었던 ‘거룩한 밤(Oh, Holy Night)’을 들으면서부터 시작한 나의 눈물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흑인 ‘언니’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한 ‘언니’의 노래에 이르러선 통제가 불가능한 한강수 타령이 되어 있었다. 얼어붙는 전율 뒤로 흐느낌이 찾아온 것은 그녀가 ‘나는 아름답다’고 노래하던 순간. 그 날 오후 금문교 다리 아래 태평양을 바라보며 노트에 썼다. 오늘 이후로 나는, 아름답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라.
이즈음 나의 고민이란 두발의 색채를 결정짓는 문제이다. 그간 딸의 비자발적 협조와 성능 좋은 족집게로 이 문제를 얼추 해결해 왔지만 이제는 귀 주위가 허연 것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단 염색을 시작하면 ‘규칙성’을 띠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아, 물론 날 가장 망설이게 하는 것은 이렇게 위장을 해서라도 늙지 않았다고,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세상을 향해 애처로운 구애의 눈길을 보내야 하는 데 있지만서도. 철학적, 당위적 차원만이 아닌 언제쯤 진정으로 늙는 게 두렵지 않다며 나의 은발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놓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까.
오고 가는 세월의 길목에 있노라니 갈등이 깊어지는 게 약 먹어야 할 시간인가보다. 구급약으론 글라이드 센터에서 사무치는 감동을 선물했던 그 이쁜 언니랑 -알고 보니 뮤지컬 ‘The Color Purple’의 주연배우였다- 둘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아름다워(Beautiful)’를 듣기! “나는 아름답다!”를 목청껏 복창하며, 이 처방만으론 2% 부족하다 싶으면 우수 어린 섹시 가이,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의 ‘당신은 아름답다구(You’re beautiful)’의 무한 반복 청취! 이쯤 되면 나든 당신이든 아름답다 자부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김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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