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20 21:03
수정 : 2007.12.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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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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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여성살이/
쇼핑을 싫어하던 나, 최근 전향했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쇼핑 한다. 처음엔 티셔츠나 니트를 한 두점 샀다. 이젠 덕 다운 파카같은 아이템까지 서슴치 않고 사들인다. 퇴근 길, 내 즐거운 쇼핑몰은 지하철 안국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 지난 가을, 7500원에 사서 걸친 낡은 베이지 트렌치 코트가 내 맘에 꼭 든다. 아니,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거야? 금방 정답이 튀어나온다. 이미 빈티지 급인 내 육신이 빈티지 패션과 혼연일체를 이뤄낸 것 아닌가? 너무 새 것은 이제 중년에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픈 깨달음!
그러고 보니 52년 넘게 사용한 육신의 부품들은 최근 몇 년 제각각 경고 사인을 보내왔다.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 보면 눈이 쿡쿡 쑤시다 못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열공’ 고3 처럼 시력보조제를 먹어본다. 신경성 위염 환자라는 과거가 있으니 체하지 않으려 밥을 천천히 먹는다. 목폴라 티를 입으면 웬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추워도 입기를 망설인다. 원래 시원찮던 아래 어금니 두개는 임플란트로 대체되어 김치나 나물도 조심조심 씹어야 한다. 다음은 안 보이는 부분. 현실을 직시하기 무서워 회피해 온 골밀도 검사를 해본다면 어떨까? 골절 가능성에 대비해 눈 내린 뒤 외출을 전면금지하라는 경고를 받기 십상이다.
해마다 조금씩 낡아가는 육신, 갑자기 의기소침해진다. 더덕은 산속에서 50년을 묵으면 산삼 대우를 받는다던데 인간 50은 온갖 성인병 대처에 급급한 처지가 아닌가? 나이 드는 게 비굴하게 여겨진다. 거기다 나이 먹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건 역전의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거울 속 내 얼굴이 너무 칙칙하다. 느닷없이 웃음보가 터진다. 더 이상 건강한 척, 나이보다 젊은 척 할 수 없어 우울한 나, 더덕을 질투하는 나를 비웃자니 맘껏 웃을 수 밖에.
그런데 웃음은 왠지 싱싱하다. 젊은 날의 싱싱한 웃음보다 한결 깊이가 있다고나 할까. 나는 결심한다. 그래, 그 모든 것이 사라져도 웃음 능력은 빼앗기지 않을 테다. 어쩜 인간의 존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엄청난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은 웃기로 결정한 자, 웃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5학년 언니의 살인 미소를 날려주마. 살아있기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웃음의 콘텐츠로 담아내는 거야. 얼마나 잘 웃을 수 있는가가 내 삶의 성적표가 되는 거지. 나는 다시 평소처럼 자신만만, 아니 교만해진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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