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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7 21:36 수정 : 2007.12.27 21:36

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몇 달 전 함께 밥을 먹던 친구가 갑자기 “나 걔랑 헤어졌다”라고 말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 간 잘 사귀던 커플이라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애인한테 다른 사람이 생겼단다. 마치 연예인 스캔들 말하듯 담담해서 정말 괜찮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멀쩡하지만 다만 분한 것이 있다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둘 다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는데 누가 먼저 말했든 무슨 상관이냐고 다시 물으니 정색을 하며 절대 아니라고 한다.

그 후로 그녀는 연애 관계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가에 관해 일장 연설을 하셨다. 그녀에 따르면 먼저 이별을 통보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끝을 낸 것이기 때문에 극복이 쉽다. 반대로 이별을 통보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휘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배신감도 크고 극복도 어렵다.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내가 “아, 그럼 너는 상처받기 보다는 상처 주는 쪽이 되고 싶다는 말이네”라고 말했더니 자기는 그렇게까지 못된 년은 아니란다.

참 요즘은 어디든 그놈의 쿨한 사랑이 대세이다. 길을 걷다 보면 ‘당하기 전에 어서 니가 먼저 끝내’라고 가수들은 울부짖고 소설에는 원나잇 스탠드 후에 깔끔하게 각자의 행복을 빌어주는 주인공들로 넘친다. 이제 연애는 관계가 아니라 오락이 되었다. 헤어진 사람은 빨리 정리하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극복이고 옛사람을 잊지 못해 눈물이라도 흘릴라치면 마음이 그렇게 약해서 어디에 써먹겠냐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관계는 정말로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마음을 다해 한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이, 더 많이 좋아했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차라리 쿨해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자신의 감정과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상처 받기가 두려워 얄팍한 관계밖에 못 맺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자기랑 헤어졌다고 전 애인을 스토킹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한 사람을 좋아했던 과거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 부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아직까지 세상 어디에도 진심을 다한 관계에서 쿨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괜찮다고 애써 자신을 다독이던 내 친구 역시 어느 날 밤 내게 전화를 걸어 나지막이 흐느꼈으니까. 고로 새해에는 우리 좀 더 ‘찌질하게’ 굴어보자.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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