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2 17:47
수정 : 2005.01.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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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도를 승무 추는 기생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일제강점기 때 엽서. 토끼, 호랑이 외에 한반도를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한 유물이 일반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서울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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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폄하된 삶 재조명
‘이 세상의 반이 남정네고 또 반이 여자일진대,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서책을 가까이할 수도 없고 과거에 나설 수도 없으며 세상 일을 논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사내들을 위해 한로(충성심 강한 명견)처럼 살다가 죽어라. 이것이 이른바 조선의 법이며 관습이며 예절이니까요. 일찍이 스승은 문하를 받아들일 때 적서의 구별이나 남녀의 차별을 정하지 않으셨지요.’
소설 <나, 황진이>로 ‘황진이 붐’을 일으킨 작가 김탁환씨는 조선시대 남성 풍류의 상징인 동시에 성적 대상이었던 기생 황진이의 속내를 이렇게 짐작했다. 최근 한국 최고의 남성 영웅 가운데 하나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오마주’가 불붙는가 싶더니 반대편에선 기생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02년 김탁환씨의 작품부터 시작한 황진이 붐은 작년 말까지 이어져 북한 작가 홍석중싸가 <황진이>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고 작가 전경린씨가 쓴 2권짜리 소설 <황진이>가 15만부나 팔리는 기염을 토하며 2004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지금까지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10편이 넘고 ‘기생’이나 ‘규방문학’ 등을 다룬 책만 해도 20여권이나 된다.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 1층에서 13일부터 열리는 ‘기생전’은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열리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400여점의 일제강점기 때 기생 사진엽서. 그 가운데서도 한반도 지도를 춤추는 기생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일제강점기 때의 엽서가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침략자의 음험한 야욕이 애조 띤 기생의 춤사위로 포장돼 거북한 이물감과 함께 아련한 상처마저 준다. 기생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들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의 당위성과 대외적 홍보용 및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해 관광안내책자, 조선풍속사진첩, 다양한 서적에서 참고 이미지로 사용되었고 지금까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유물들을 공개한 역사자료수집가 이돈수씨(코리아니티닷컴 대표)는 “일제가 한반도를 여성의 몸과 기생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처녀지’를 점령한 침략자의 시선이자 동시에 무력한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기생들의 삶과 시대상에 대한 시각적인 검토를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번 전시회는 기생들의 서화들부터 현대작품까지를 총망라했다. 일제가 만든 사진 엽서 외에도 추사 김정희와 그의 스승 신위의 연인으로 알려진 평양 기생 소교가 그린 묵죽도, 고종 때 평양 기생이었던 진향의 산수화 등 유명한 기생들이 남긴 서화들도 만날 수 있다. 그 밖에 난초가 그려진 기생 치마폭, 성행위를 묘사한 기생들의 동경(거울)과 향갑 노리개 등 기생들의 장신구와 화장구, 동강 권오창의 기생 초상, 기생의 모습을 다룬 현대작가 배준성씨의 사진과 윤석남씨의 설치조각까지 준비돼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옥션 김효선 팀장은 “기생들은 조선시대 여흥문화를 대표하지만 성매매여성이란 부정적 시각으로 이미지가 왜곡, 폄하돼 미학적 가치가 담긴 작품들조차 위상 정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02)395-0331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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