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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17:30 수정 : 2005.05.11 17:30

요즘 영화배우 문근영이 장안의 화제다. 그가 주인공인 <댄서의 순정>이 개봉 전부터 ‘경이적인 예매율’로 떠들썩하더니 개봉한 지 열흘도 안 돼 관객 100만명을 기록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이미지는 정말 압권이다. 1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천진무구한 이미지는, 어린 신부나 섹시한 라틴 댄서, 또는 광고 속의 레게스타일의 힙합걸 캐릭터와 대비되면서 더욱 강조된다. 그래서 더 위험천만이고 아슬아슬하다. 세상이 그의 아름다움을 순식간에 삼켜버릴까봐.

순수하고 어린 이미지 속에서 감지되는 ‘어른스러움’은 그의 또 하나의 개성이다. 어른들의 신산한 인생살이도 질겁하지 않고 이해해 줄 듯한 어른스러움. 아마도 최근에 밝혀진 가족사와 선행이 그런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는 듯하다. ‘순수’가 가장 큰 미덕이라고 교육받아온 여성들, 살아남기 위해 일찌감치 ‘순수’를 내던진 남성들에게 그래서 문근영이 인기인가 보다. 영화 속에서도 그를 둘러싼 환경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우호적이다. 누구나 문근영 앞에만 서면 지극한 배려와 사랑의 화신이 된다. 영화는 문근영에게 “네가 착함과 순수함을 간직하는 한 배려와 사랑이 상으로 주어질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흑기사 혹은 키다리 아저씨로부터 절대적 지원과 보살핌을 받는 것, 이것은 사실 ‘힘’을 거세당한 여성들의 오래된 판타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의 법칙이란 냉혹해서 타인을 온전히, 그리고 헌신적으로 책임져줄 흑기사란 거의 없으며,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기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알아차리게 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의 순수에 보내던 찬사와 박수 갈채를 쿨하게 거두어들여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그러나 고착된 칭찬은 자칫 고래를 질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를 “보통 여배우들과는 다르다”고 추켜세우는 일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누군가 문근영의 순수함을 이용해 다른 여배우들의 개성을 평가하고 부정한다면 그것은 칭찬이 아니고, 분명한 이간질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어린 시절의 순수를 뒤로 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수많은 고난과 고통과 어두움을 경험한 후에 자신이 원한 것이 결국은 ‘순수’였음을,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순수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그에게도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절망할 수 있는 시간, 혹은 그가 나빠질 수도 있는 시간, 그런 자유 말이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그가 진정으로 성숙하고 강해질 때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듯. 그러니 그때까지는 꽃으로도 그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박미라/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gamoo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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