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9 16:55
수정 : 2005.01.19 16:55
나는 하루에 수십 통의 메일을 받는다. 보낸 이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오빠, 오랜만이야’란 메일 한번 잘못 열었다가 컴퓨터와 하루 종일 ‘독대’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 같은 불우한 컴퓨터 이웃을 비롯해 웬만한 컴퓨터 사용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이름이 있다. 바로 ‘컴퓨터 업계의 슈바이처’ 안철수씨.
‘안철수’라니, 나에겐 “철수야, 놀자~!”의 철수만큼이나 무척 친근한 이름이다. 왜냐면 난 도스(Dos) 체계 때부터 컴퓨터를 꾸준히 망가뜨려왔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공짜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안철수’라는 이름이 나타나 아픈 곳을 치료해 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분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했다. 홀쭉하고 마른 얼굴에 까칠한 수염이 난 컴퓨터 도사. 나중에 그분이 대학생이 닮고 싶은 최고경영자로 얼굴을 알릴 무렵부터 그 날렵한 이미지는 자동으로 로그-오프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테디 베어스타일의 둥글둥글하고 착한 지금의 안철수씨 이미지가 훨씬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그 외모가 그의 경영 스타일을 그대로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격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성 경영인답지 않은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이윤은 기업 활동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믿는다는 그는 ‘사장님’이 아니라 ‘독지가’쪽이 어울린다. 실제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사익보다는 공익 쪽이다. 일례로 3백억~4백억원 가치의 컴퓨터 백신을 정부 지원 한푼 받지 않고 10여 년간 무료 보급해온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가 처음부터 빌 게이츠같은 대부호가 되고 싶었다면 세계적인 보안 회사의 프로그램 인수 유혹을 단번에 뿌리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발간된 그의 책을 보면 그는 조직원간의 경쟁보다는 팀워크와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상명하달식 조직 문화는 애초에 그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은 ‘엄마형 리더십’이라 불린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돌보듯 고객과 조직 구성원을 배려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의 백신 프로그램은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엄마의 ‘약손’과 너무도 닮았다.
1995년 서울 서초구의 한 뒷골목에서 동료 3명과 함께 시작한 안철수연구소는 벌써 올해 창립 10년을 맞는다. 그동안 직원과 매출도 엄청나게 늘었지만 그는 10년 전과 변함없이 매일 일기를 쓴다고 한다. 이런 성찰적 자세와 사회에 대한 꾸준한 기여, 정직함 등의 미덕이 오늘날 그를 가장 존경받는 최고경영자의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글/권리(소설가)·사진/한겨레 자료사진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