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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3 18:01 수정 : 2005.09.14 17:29

올해로 창립 10년을 맞은 돌실나이 김남희 사장은 실용적일 뿐 아니라 몸에 좋은 뛰어난 우리 옷 문화 전통을 현대에 이어가고자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멋있고 값싼 ‘순한옷’을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 입도록 하는게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그의 꿈이다.

■ 돌실나이
김남희 사장

“어머, 우리 회사 옷을 입고 오셨네요?”

 기자의 옷을 본 돌실나이 김남희 사장(37)은 한 눈에 반색을 했다. 자신의 손을 일일이 거쳐 시장에 나온 “자식 같은 옷들”을 못 알아볼 리 없다는 그다. 1995년 문을 열었으니 ‘돌실나이’는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돌실나이’는 전남 곡성군에서 나는 최상품의 베를 부르는 말이다. 우리 옷 문화에 대한 전통을 만들고 이어가는 이들에 대한 경외와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회사 이름을 지었다.

 국민대 의상학과 동기인 정경아씨와 함께 문을 연 사무실에 이제는 김 사장 혼자 남았다. 정씨는 인사동에서 우리 옷집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서로 행복하다”는 그는 아직도 ‘창립 멤버’인 정씨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리 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는 ‘현역’이다. 매장의 거의 모든 옷을 직접 디자인한다. 회사 안에서도 ‘사장님’보다는 ‘디자인 실장님’으로 불릴 때가 더 많다. “영원히 실무 담당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실장이란 호칭이 좋다”는 그는 10년 동안 디자인을 하고, 옷감을 고르고, 가격을 결정하는 일까지 모두 손수 챙겨왔다. 소비자와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자신이 진정 만들고 싶던 옷을 만들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번 가을을 겨냥해 그는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실내복을 시장에 내놓았다. 중국에서 만든 5000원, 1만원짜리 티셔츠보다는 비싸지만 한복이나 예장용 개량 한복보다는 훨씬 싸다. 그는 서민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하려면 값이 비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양새도 옛 사람들이 흔히 입던 평상복에 가깝다. 그는 이런 옷을 “순한 옷”이라고 부른다. 천연 소재로 은은하게 물들인 평상복은 말 그대로 ‘노동복’이자 ‘서민복’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재고가 남지 않도록 조절해 매출이 급성장하거나 회사 규모가 갑자기 커지지는 않지만 뱃 속은 편하다. 연매출이 80~90억 정도로 자생력까지 갖췄으니 큰 욕심 없이 ‘소신’을 밀고 나갈 만하다는 판단이다.

디자인 하고…옷삼 고르고 영원한 현역
부담없는 가격·편한 디자인…우리옷 실내복으로 제작
“후배들 성장 도움 주고 고유한 옷 문화 만들고 싶다”

“소박한 옷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어요. 5~6년 전 개량 한복 바람이 불면서 시장에서 화려한 옷을 요구했어요. 제 머릿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천박한 옷들을 만들면서 괴로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팔려고 내놓아야 했으니까.”

 괴로움은 그뿐 아니었다. 가정도 그를 쉬 놓아주지 않았다. ‘재취업 주부’로 이 일을 시작했던 탓이다. 부모들은 ‘운동권’이던 그를 졸업과 더불어 “팔아넘기듯” 서둘러 결혼시켰다. 시댁은 양말까지 다림질시키던 엄한 집안이었다. 그 엄함에 대해 지금은 “시부모 세대 나름의 내리사랑 방식”으로 이해하지만, 그때 철부지 새댁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머릿 속은 미처 만들지 못한 옷들에 대한 상념으로 어지러웠고, 아이는 울어댔다. 우여곡절 끝에 시댁에서 분가한 뒤 3년 동안 아이만 키웠다. 일을 하고 싶은 열망으로 집에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 옷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결혼 때문에,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자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이해도 돼요. 저도 어린이집에서 쫓겨난 애를 들쳐 업고, 눈 오는 날 애를 받아주는 놀이방을 찾으러 다니던 일이 눈에 선해요.”

남의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시작한 매장은 10년 뒤, 전국 30여군데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꿈’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후배 여자 디자이너들이 클 수 있는 ‘디딤돌’이 돼주리라 했던 꿈도 아직 달성하지 못했거니와, 무엇보다 우리 옷을 생활로 끌어들이고 고유한 옷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배웠고, 이 말이 제 삶의 주제가 되었어요. 우리 문화의식과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생겼죠. 옷은 고립적으로 발전할 수 없어요. 고전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우리 옷을 현대화 시켜 해답을 찾아내고 싶어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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