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인 핵가족 구조와 권위적인 위계질서의 대가족 체제를 넘어 배려와 보살핌의 원리를 먼저 생각하는 지역 돌봄 공동체의 모델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서울 하자센터에서 열린 돌봄 사회 관련 심포지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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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동참하면 국가발전
사회로 확대하면 대안 공동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위기 의식에 따라 최근 ‘돌봄 문화’에 대한 재고찰이 이어지고 있다. ‘돌봄’이란 전통적으로 주부가 그의 자녀와 가족을 돌봐온 모든 일을 가리킨다. 방향은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확장이다. 여성에게 전가하던 돌봄의 책임을 남성 나아가 사회로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27일 서울시대안교육센터 ‘하자’에서 열린 ‘돌봄과 소통이 있는 가족문화와 지역사회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서강대 사회학과 조옥라 교수는 돌봄을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의 가정은 권위주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내면화하는 장소가 돼 더는 돌봄의 공간으로 적절치 않다”며 “이제는 돌봄의 문제를 가정보다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된 노동과 낮은 보수를 받으면서 간호사, 사회사업가, 가정관리사 등으로 일해온 여성의 돌봄 가치를 새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페미니스트 교육철학자 넬 나딩스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는 “여성 스스로 돌봄을 평가절하하면서 이 일을 기피해도 안 되지만 사회도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과 돌봄’의 행복한 만남은 사회의 배려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돌봄의 책임을 남성이 함께 나누어 지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23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기독청년회전국연맹이 서울 사회복지모금회 강당에서 연 토론회에서 윤홍식 전북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국가에서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 지원 수준이 높을수록 국가의 빈곤율이 낮고 국가경쟁력이 높다”며 “돌봄에 한국 남성이 합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녀와 세대 간 격차를 넘어 사회가 돌봄 노동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데는 지역 공동체와 관련 학자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인다. 실제 공동육아나 생활협동조합 등으로 지역 공동체의 기반을 일군 일부 지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가족을 넘은 돌봄 공동체에 대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김찬호 교수는 그 사례로 공동육아로 시작해 지역 공동체 모임을 일군 서울 마포의 성미산 학교, 홀몸 노인과 장애인의 빨래를 해주는 공간인 대전 석교동의 빨래방, 일산 후곡 마을의 녹색마을 만들기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가족을 넘어서서 공동의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웃들이 넘나들고 서로 돌보게 된다면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이 다소 해소될 수 있다”며 지역 공동체 조직을 ‘돌봄 위기’의 대안으로 내세웠다. 지은희 상지대 교수(전 여성부 장관)는 “인구의 4분의 1에 이르는 한부모 가정, 1인 단독 가구의 증가로 돌봄에 대한 경제적인 비용이 늘면서 각 가정의 주부가 해오던 돌봄 노동에 대해 이제 사회가 고민해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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