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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7 18:50 수정 : 2018.03.27 21:08

27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권력형 성폭력, 2차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대표,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권정호 민변 변호사,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사진 박다해 기자

“1차 가해뿐만 아니라 2차 가해 감시, 개선하기 위해 설립”
이수정 교수 “‘강간’의 기준은 ‘상대방의 동의’가 돼야 한다”
김태형 심리연구소장 “‘권력형 성폭력’은 사회적 문제”

27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권력형 성폭력, 2차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대표,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권정호 민변 변호사,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사진 박다해 기자

“직속 상사는 일상적으로 성적인 말을 하고, 음란한 사진을 보여주고, 여자로 보여서 힘들다고 말하고, 결혼한 사람도 감정이 있다면서 추근거렸습니다. (중략) 문제의 시작은 한 사람이었지만, 그 공기가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남자 상사들은 너무 당연하게 함께 성희롱을 하였고, 여자 상사는 오히려 제가 남자들에게 꼬리를 친다고 폭언을 하고 소문을 냈습니다. 성희롱에 항의하면 사회 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신 공격을 하였습니다.”

“(성희롱을 신고하고 조처를 요구하자) 부서장은 ‘성희롱이 업무냐, 성희롱이 업무보다 중요하면 그만두고 고소하라’고 말하고 저를 업무에서 배제하였습니다. 인사팀장은 ‘경력직의 조직 부적응이므로 참거나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인사위원회에서 대표이사는 “회사가 어려워서 돈 벌자고 야단인데 할 일이 없고 배가 불러서 남녀가 감정싸움을 했다. 여권이 신장되어 성희롱 성추행으로 사람 하나 병신되기 쉽다”고 질책하였습니다. 전무는 “성희롱 신고를 당하는 사람도 창피하고 고통스럽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으면 성희롱을 안 당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왜 성희롱을 당하였느냐. 입사지원서에 동료들과 원만하게 일하겠다고 써놓고서 부끄럽지 않게 근무하였느냐”고 다그쳤습니다.”

-STX의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사례

“(중앙대 조소과 ㄴ교수의 성폭력 사실을) 당시 학교에 알리자, 과 교수들은 피해 학생들에게 각각 연락해서 재판이 몇 년 걸릴테니 고소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습니다. 또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대자보를 써서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했지만 ‘과 망신’이라는 교수들의 항의에 단 하루 만에 대자보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에서는 ‘꽃뱀이다. 돈 받으려고 자작한 사건이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우리 피해자들은 잘 해결하겠다는 중앙대 인권센터와 과 교수님들 말씀만 믿고, 형사고소를 포기하고 가해자의 미술협회 퇴출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습니다.”

-중앙대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사례

성폭력 피해자들은 2번 운다. 가해자에 의해서, 그리고 주변인들에 의해서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이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경찰로부터 3차, 4차 가해를 받는 것도 다반사다. 폐쇄적인 조직이나 단체일수록, 피해자는 ‘꽃뱀’으로 둔갑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신공격까지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2차 가해를 감시, 개선해 나가기 위해 ‘전국미투생존자연대’(미투연대)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식 발족했다. 권력형 성폭력 경험 피해자들이 모여 직접 꾸린 ‘미투연대’는 피해자가 중심이 돼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조직과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를 감시, 개선하기 위해 설립됐다.

앞서 상급자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미투’에 동참한 바 있는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미투연대’ 대표를 맡았다. 남 대표는 “오늘 발족하는 미투연대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피해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권력형 성폭력’ 정책을 제안하고, 조직과 공권력에 의한 2차 가해를 감시하며, 각계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권력형 성폭력 지원 단체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발족식에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정미 대표는 “하루하루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증언은 성폭력이 그 어디에서나, 그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가 제공했고, 가해자는 극히 일부이며, 과도한 ‘미투’ 운동은 문제’라는 소위 ‘백래시’ 또한 이뤄지고 있다”며 “‘백래시’는 통상 여러 2차 가해의 형태로 나타나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주고 성폭력을 없애는 데 커다란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권정호 변호사는 “불길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이야말로 한국사회에서 힘이나 지위를 악용한 성적 폭력행위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자, 사회 시스템에 내재하는 남성 중심주의, 폭력문화 및 차별주의를 혁파하려는 사회문화 운동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지난 촛불혁명의 연장선에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21세기의 민주화운동이라고 보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발족식에 이어 열린 세미나에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국내의 어학사전, 백과사전 등에 나와 있는 강간의 원뜻은 ‘사람을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강제하여 성관계를 함’이라고 나와 있는데 영어로 된 여러 사건들에 나오는 ‘강간’(rape)의 요건은 ‘동의’(consent)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형법상 강간의 정의에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를 새롭게 명시한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형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보다는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라고 수정해줄 것을 추천한다”고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성폭력 사건은 일반적으로 물적 증거가 없이 양측의 구두 진술로만 다투어지는 사건들이기에 암묵적인 ‘의사’라는 개념을 적시하기 보다는 차라리 구체적인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대화나 행동 등으로 입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심리연구소 ‘함께’의 김태형 소장은 “권력형 성폭력은 반민주적인 군국주의 조직문화, 불평등한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또 “절대 다수의 남성들도 권력형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라며 “(‘미투’는) 군국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개혁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남성들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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