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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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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상담실 성폭력’ 폭로 2년
준강간 고소했지만 검찰 불기소 처분
재판에선 음란 문자·동영상 제공만 다뤄
그마저도 1심 집행유예·2심에서 무죄
변호인 “예상은 했지만 재판 결과 참혹”
피해자 1명, 민사손배소 제기…1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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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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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사회 전 분야로 번지는 가운데 의사와 환자 간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폭로가 나왔습니다. 27일 <동아일보>는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한 피해자의 증언을 보도했습니다. 피해자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의사가 치료를 빌미로 성관계를 제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의사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한겨레>는 “심리 상담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당시 사건은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의사와 상담사라는 직업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가해자가 심리상담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신적 약점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했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과연 2년 전 ‘미투’는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요. 1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상담사는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은 왜 응답받지 못했을까요. 이제부터 시간을 되돌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 “그는 교주 같았다”
“내담자 그룹 사이에서 그는 교주 같았다.” 여기서 ‘그’는 유명 심리상담사 ㄱ아무개 심리 클리닉 대표를 말한다.
2016년 2월 말, ㄱ대표는 경찰에 체포됐다. 2012년과 2013년 각각 상담소를 찾은 여성 ㄴ씨, ㄷ씨와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고, 상담실 내 환자용 카우치(긴 의자)에서 성관계하는 장면 등을 몰래 촬영해 주변에 보여준 혐의였다. ㄴ씨와 ㄷ씨 등은 “상담 과정에서 털어놓은 정신적 취약점과 심리 특성을 활용해 성적인 관계를 사실상 강제했다”며 ㄱ대표를 준강간, 감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등으로 고소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구체적이었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ㄷ씨는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어린 시절 새어머니는 ㄷ씨의 작은 잘못에도 걸핏하면 매를 들었다. 어른이 돼서도 불안과 우울 증세가 이어졌다. 2013년 9월, ㄷ씨는 ㄱ대표가 운영하는 클리닉을 찾았다. 상담은 1년 반 동안 계속됐다. 어느 날, ㄱ대표가 성관계를 요구했다. 학대를 일삼는 새어머니보다 방임하는 아버지에게서 상대적 안정감을 느꼈던 ㄷ씨는 이 요구에 저항하지 못했다. 또 다른 피해자 ㄴ씨는 “팔이 부러졌을 때도 ㄱ대표가 시키는 대로 그의 집에 가서 식모처럼 수발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ㄱ대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ㄱ대표는 평소 내담자들에게 “정신분석의 윤리는 따로 있다”, “여기는 교회처럼 진리를 실험하는 장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내담자는 그를 “교주 같았다”고까지 표현했다. (
▶관련기사: [단독] 정신적 약점 이용해 ‘성폭력’…법규 없어 처벌도 못해)
■ 상담실이라는 심리적 권력관계의 덫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는 일상에서 맺는 인간 관계와 전혀 다르다. 미국의 린다 조르겐슨 박사 등은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극도의 의존 상태’가 되는 이유를
1) 효과적 심리치료를 위해 내담자는 상담사를 무한히 신뢰하고
2) 내담자는 자신의 취약점을 모두 털어놓기 때문에 상담실에선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성립하며
3) 심리치료의 중요 단계인 ‘전이(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억압된 감정을 타인에게 재현하는 무의식적 행위)’가 의존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상담사와의 성관계는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피해자 ㄷ씨는 공황발작, 자살충동, 대인공포증 등을 겪었고, ㄴ씨는 ㄱ대표가 성관계 동영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고 극심한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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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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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 항거 불능’에 주목하다
왜 준강간이었을까. 우선 명시적인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성폭행으로 결정하는 현행 법체계에서 강간죄로 ㄱ대표를 고소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임주환 변호사는 2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피해자들의 ‘심리적 항거불능상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 또는 추행’을 의미한다. 이 사건은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내담자의 정신적 취약점을 이용해 성관계를 맺은 것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처벌을 요구한 첫 사례가 됐다.
당시에도 고소 이후의 전망이 밝지는 않았다. 한국 형법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음을 입증해야만 준강간죄로 처벌한다. 그런데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거나 정신기능 이상인 경우가 아닌 다른 이유를 법원이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한 경우는 드물었다. (
▶관련기사: [단독] 심리상담실이 위험하다)
■ 검찰의 불기소 처분…싱거웠던 재판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검찰은 2016년 2월 말, ㄱ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경찰이 동영상 유포 등을 우려해 압수한 휴대전화도 ㄱ대표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검찰이 상담실 권력관계에 따른 강압 가능성 등은 외면하고 표면적인 ‘합의’ 여부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피해자들이 ㄱ대표를 고소한 여러 혐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준강간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재판에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대해서만 다뤄졌다. 사건의 핵심인 성폭행 혐의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성폭행 장면을 유포한 2차 가해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셈이 됐다.
1심은 이 혐의에 대해 ㄱ대표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ㄱ대표가 피해자와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주변에 보여준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보낸 점만 인정한 결과다.
이마저도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2심 판결문은 “피고인이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여야 하는 지위에서 오히려 내담자의 의존심리에 편승하여 손쉽게 관계를 전환하고, 진지한 배려와 애정보다는 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관계를 주도함으로써 상담자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면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썼다. 임 변호사는 “예상은 했지만 형사 재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미투’ 폭로로 관심을 받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형법 제303조)’으로 고소할 순 없었을까. 임 변호사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을 적용 법조로 제시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업무상 위력에 대해 (좁게 해석하는) 판례의 태도를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겨레>가 살펴본 결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가 적용돼 유죄 판결이 난 대다수 사건에서 이 혐의가 단독으로 적용된 경우만 놓고 보면 징역 1년을 넘어가는 예가 극히 드물었다. (
▶관련기사: 안희정 혐의 ‘권력형 성폭력’ 판례…‘징역 1년’도 드물었다)
■ 피해자의 끝나지 않은 싸움
피해자 ㄴ씨는 형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현재 ㄴ씨는 임 변호사와 함께 ㄱ대표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민사 소송은 실정법을 위반했느냐가 쟁점이 아니다. ㄱ대표의 행위가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하였는지가 쟁점 가운데 하나다. 임 변호사는 “ㄱ대표는 심리상담사로서 내담자 보호 의무가 있었지만 되레 이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다. 민사에서는 이런 윤리적인 기준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폭로 이후 2년, 피해자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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