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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30 12:37 수정 : 2018.03.30 15:51

2017년 8월 3일 경기 수원 자택에서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과 담소 나누던 안점순 할머니.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30일 오전 10시께 운명
이제 남은 생존자는 스물아홉 분

2017년 8월 3일 경기 수원 자택에서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과 담소 나누던 안점순 할머니.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의 궂긴 소식이 30일 오전 10시께 전해졌다. 향년 90.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난 안 할머니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도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 네살이던 1942년 "서울 마포 복사골 큰 방앗간 앞으로 몇 살까지의 여자들은 다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어머니와 나갔던 할머니. 쌀가마 저울에 차례로 올라서서 나이는 어리나 몸무게가 나간다는 이유로 트럭에 실렸다. 그 주변에 서 있던 총을 찬 일본 군인과 조선사람들, 트럭에 매달려 왜 내 딸을 끌고가느냐 울부짖었던 어머니를 안 할머니는 오래 기억했다.

기차로 평양과 중국 북경 등을 거쳐, `산도 없이 모래만 보이는 곳'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할머니는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 돌아왔다. 떡시루를 이고 딸이 돌아오게 해달라 기도하고 돌아서던 어머니. 그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으나 그 뒤로도 할머니의 삶은 고단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안점순 할머니 조문보 참고)

평생 홀로 살아온 안점순 할머니는 조카딸의 도움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린 뒤 수요시위와 아시아연대회의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에 나섰다.

“못된 짓 한 저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되는디…” 생전에 몇번이고 말씀하시던 안점순 할머니의 말씀과 함께, 2018년 8월 수원 자택에서 잠시 엿본 할머니의 마지막 여름을 떠올린다. 그 여름의 환한 미소처럼, 고통없이 편히 쉬소서.

안점순 할머니가 지난해 8월 3일 경기 수원시 자택에서 대문 앞까지 손님을 배웅 나와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안점순 할머니가 경기도 수원 자택 거실에서 환한 미소로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을 맞이하고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안점순 할머니의 수원 자택에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놓여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은 대부분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방바닥에 모여 있다. 바닥에 놓인 거울에 안점순 할머니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곱게 단장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과 담소를 나누는 안점순 할머니.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여름. 작은 마당에 초록이 가득하다. 수원/이정아 기자
2017년 5월 6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효잔치에 참석한 안점순 할머니가 효도사진 촬영 중 환히 웃고 있다. 광주/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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