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 집회’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휴대전화 조명으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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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안희정 재판’ 비공개 진술 입수
재판부 “정상적 성인 사이의 사건” 말했지만
피해자 “자포자기 상태…끔찍한 기억” 진술
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 집회’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휴대전화 조명으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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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비서 “스캔들 막는 것도 업무”
제3인물 ㅊ씨 “옥상 2차 기대” 문자에
김지은씨 “방 길목 지키고 있었을뿐” 성폭행 다음날 순두부식당·와인바?
“순두부는 다른 공무원이 제안
실제론 햄버거로 아침식사
와인바, 현지교민과 업무상 만남” 씻고 온 건 피해자답지 않다?
김씨 “안 전 지사 지시에 따른 것
안으라, 청소하라, 나가라고도 해
시키는 대로 할뿐 반문할 수 없어” 피해자 전임으로 일했던 수행비서 ㄱ씨의 법정 증언 녹취서에는 피해자가 ㅊ씨 문자에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지사가 ㅊ에게 스킨십을 하려고 해서 제가 자연스럽게 어깨를 중간에 밀고 들어가며 남들이 오해를 삼지 않게 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검사가 ‘그런 스캔들을 막는 것도 수행비서 업무 중 하나냐’고 묻자 ㄱ씨는 “그렇다. 후임 수행비서(피해자)에게도 (이런 사실을) 인수인계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세부적인 내용에서 피해자의 증언에 모순, 불명확한 점이 다수 있고, 피고인의 아내인 민씨의 증언이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법정에서 ‘새벽에 난데없이 수행비서가 침실에 침입했다’는 민씨의 증언과 관련해 △민씨가 다음날 1층에 있는 피해자 방에 가서 눈썹펜슬을 빌렸고 △‘왜 새벽에 침실에 들어왔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민씨는 법정에서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렇다” “제가 상황 판단이 됐으면 여기까지 와 있지도 않았을 것”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③ 성폭행 다음날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 찾아서 문제? 피해자는 수행비서 발령이 난 2017년 7월3일 이후 채 한 달이 되기 전인 7월30일 러시아 출장 수행 중 성폭행을 당했고, 이튿날 평상시처럼 수행비서 업무를 했다. 재판부는 “간음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로서 열심히 수행하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피해자의 주장이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 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등을 근거로 봤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순두부’ 관련 진술은 당시 출장에 동행한 충남도청 공무원의 공개 증언에서 나온 것으로, 피해자는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혜선 변호사는 “순두부 식당을 검색해서 찾았다는 건 피고인 쪽 증인의 증언일 뿐이다. 피해자한테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확인한 적이 없다. 아침에 식당을 찾는 과정에서 순두부를 제안한 것은 도청의 다른 공무원이었으며, 결국 햄버거로 아침 식사를 했다는 게 피해자 얘기”라며 “설사 순두부를 검색했다고 해도 성폭행 여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와인바 역시 안 전 지사의 공식 ‘업무 지시’였고, 일행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는 러시아 대사가 마련한 발레 공연을 거부하고, 대사가 제안한 다른 일정도 재차 ‘싫다’고 했다고 한다. 이후 피해자에게 “와인바 등을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와인바에는 안 전 지사와 피해자 외에 현지 교민이 계산 때까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한다. 안 전 지사와 피해자 둘만의 개인 일정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 범죄심리학 전공 교수는 1심 판결 뒤 “재판부는 순두부 등 ‘피해자답지 못함’을 입증하는 정황적인 진술을 제시하는데, ‘피해자성’에 룰이 있는 게 아니다. 피해자성이 사건 즉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한 달 후에, 수년이 지나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④ 담배 가지고 오랄 때 거절할 수 있지 않았나? 재판부는 밤에 담배와 맥주를 구실로 호텔 객실로 부르는 안 전 지사의 지시를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선고문과 보도자료는 피해자가 전임 수행비서 ㄱ씨에게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자발적으로 호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서술돼 있다. 그러나 전임 수행비서 ㄱ씨는 재판부 앞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들어가지 말라’는 말밖에 없었고, 실제로 전임 수행비서로서 (지사가) 불렀는데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회피용으로 그렇게 답변했다”는 등 자신의 ‘본심’은 달랐다고 증언했다. 발령 두달째 되던 2017년 9월3일 발생한 스위스 출장 성폭행 혐의도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의문이 가는 사정”이라며 “ㄱ씨에게 피해 사실을 호소했고, ㄱ씨도 피고인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피고인의 객실로 들어가 간음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의문’의 이유로 들었다. 실제 ㄱ씨는 피해자에게 “들어가지 말고 (문) 앞에 두고 텔레그램으로 ‘앞에 두었다’라고 답장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ㄱ씨는 법정에서 재판장의 질의에 “문 앞에 걸어두고 가는 것은 사실상 저는 해본 적이 없다” “지사님이 찾는 물건을 바닥에 두고 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저희 태도에 맞지 않는다”며 당시 자신의 조언이 무의미했다고 시인했다. ⑤ 씻고 오라 했는데, 씻고 온 게 피해자답지 않았다? 재판부는 2017년 8월13일 강남 호텔 성폭행과 2018년 2월25일 마포 오피스텔 성폭행을 서술하면서 특별히 “씻고 오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재판부는 마포 오피스텔 성폭행과 관련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 수행비서도 아니고(정무비서이고) 달리 당시 심리적으로 제압을 당한 상황이라 볼 만한 정황도 없으며…,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의 심리 상태는 검찰의 피해자 신문조서로 짐작해볼 수 있다. 피해자는 마포 오피스텔에서 들었던 “씻고 오라”는 말을 “지시”라고 표현했다. 이날 있었던 안 전 지사의 ‘지시’는 “씻고 오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안으라”고 했고, 폭행이 끝난 뒤에는 다시 “씻으라”고 했다. 피해자가 일련의 과정을 서술한 내용은 마치 업무 지시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 “관계가 끝난 후 본인이 씻더니 저보고도 씻으라고 해서 씻었고, 그 후에 또 침대 위를 청소하라고 청소도구 위치를 알려줘서 ‘돌돌이’로 청소를 했고, 빨리 나가라고 해서 당시 갖고 있던 돌돌이 테이프 뜯은 거를 ‘휴지통 어디 있어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이 급해서 그냥 가지고 나왔다.” 그는 휴지통이 어디 있냐는 질문조차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지사에게는 뭘 물어볼 수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반문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안 전 지사는 검찰에서 ‘○○○(피해자)이 밀회를 즐기는 마음으로 오피스텔에 왔고, 함께 맥주 한잔을 했고, ○○○이 먼저 ‘저 씻고 올게요’라고 하며 샤워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안 전 지사의 진술을 인정했다. 피해자가 당한 성폭행 4차례 중 3차례는 2017년 7월3일 수행비서 발령을 받은 뒤 9월3일 스위스 출장까지 2개월 안에 생긴 일이다. 12월 정무비서로 발령이 난 뒤 마음을 추스르던 피해자는 2018년 2월25일 마포 오피스텔에서 약 6개월 만에 또다시 네번째 성폭행을 당하면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난 여기 못 있겠구나. 이 소굴에서 나와야겠다. 안 그러면 계속 부를 테니까.” 진명선 <한겨레21> 기자 torani@hani.co.kr (상세한 내용은 <한겨레21> 1226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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