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30 05:00
수정 : 2018.11.01 18:07
[페미니즘 지도를 잇다] ① 아르헨티나-페미니즘으로 전진하는 교황의 나라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낙태 합법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투, 불법촬영, 편파수사… 분노한 여성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웁니다.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 인식 개선과 사회·정책적 진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쏟아집니다. <한겨레>는 ‘2018년 한국’만큼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페미니즘으로 연결된 여성의 목소리로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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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의회 인근 골목에 붙어 있는 낙태 합법화 주장 포스터. “우리가 낳고 우리가 결정한다”는 문구 아래 조그맣게 펜으로 “우리의 아들딸을 죽일 건가?”라는 반대 메시지가 적혀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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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임신 14주 이내 낙태 허용’ 법안의 운명을 가른 건 10명이 채 안 되는 수였다. 상·하원에서 모두 팽팽한 논의가 이어진 것이다. 법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결국 이겼다. 그러나 민심은 달랐다. 상원의 표결을 앞두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이들은 낙태 합법화 쪽에 손을 더 많이 들었다.
의회 앞 광장에서 만난 젊은 여성들은 대체로 낙태 합법화를 적극 지지했다. 23살의 아일렌은 “‘두 생명을 살리자’고 말하는 (낙태 처벌) 주장은 완전히 위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낙태죄가 있든 없든 낙태 수술은 계속될 것”이라며 “그렇다면 더 많은 여성이 죽지 않도록 안전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니 우나 메노스’ 운동과 낙태 합법화 시위에 모두 참여했다는 중학생 팔로마 역시 “완전히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에 있는) ‘5월광장’에만 가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노숙하는 여성과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오히려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무작정 낳는 일이 무책임하지 않나요?”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는 공감대도 찾아볼 수 있었다. 딸과 함께 광장을 찾은 발레리아는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차별, 낙태 등) 다른 방식의 폭력도 존재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다니엘라는 낙태보다 피임을 강조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건 예방과 교육에 달려 있을 뿐, 낙태가 해법이 될 순 없다는 의견이다. “어떤 여성이든 폭력을 겪고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니 우나 메노스’ 운동은 지지하지만 낙태는 반대해요. 엄마와 아이 ‘두 생명’이 달린 일이잖아요.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을 만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낙태 합법화는)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선례를 참고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중남미에선 우루과이와 쿠바, 멕시코의 일부 도시만이 임신 초기 낙태 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중년 남성 알레한드로는 “핵심은 낙태가 어떤 행위인지 (산모가) 충분히 인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루과이에선 낙태를 결정하기 전에 정부가 정신과 의사나 변호사의 상담을 지원한다고 해요. 낙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충분히 고민한 뒤에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어쨌든 두 생명이 달려 있는 일이니, 이런 사전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현지 언론 <클라린>이 지난 4월 보도한 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단위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을 때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51%, 반대는 43%였다. 주요 대도시 중심으로 대상을 한정할 경우 찬성 62%, 반대 20%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찬성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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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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