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불법촬영, 편파수사…분노한 여성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웁니다.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 인식 개선과 사회·정책적 진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쏟아집니다. <한겨레>는 ‘2018년 한국’만큼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페미니즘으로 연결된 여성의 목소리로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려봅니다.
11일 케냐 미고리주 쿠리아에서 열린 ‘2018 청소년 포럼’에 참석한 쿠리아족 여성청소년들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최대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 남쪽으로는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케냐 미고리주 쿠리아에는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 청소년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에서 일하는 9명의 활동가들입니다.
지난 10일 MEK의 주최로 쿠리아에서 치러진 ‘여성 성기 훼손(FGM, 에프지엠) & 조혼 근절 케냐 청년 대회’에는 케냐 전역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30여명의 청년 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여성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여성 성기 훼손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며 ‘아이 윌 엔드 에프지엠’(I WILL END FGM) 캠페인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튿날 이어진 ‘2018 청소년 포럼’에는 쿠리아 지역 여성 청소년 200여명이 모여 에프지엠, 조혼, 월경, 재생산 권리, 피임등의 이슈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성평등없인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케냐의 여성인권 활동가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요?” 포럼에 참가한 여성 청소년들에게는 이들이 꾸는 꿈을 물었습니다.
나탈리 로비 팅고,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 대표
“제게 페미니즘은 ‘더 나은 세상’(Better World)를 의미해요. 여성이 성폭력에 내몰리지 않는 것,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보편적 인권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는 케냐 남서부 케한차 지역에서 반 에프지엠, 여성청소년 교육 등의 활동을 하는 비영리 재단)
막달린 마주마,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페미니즘은 고용, 정치적 권한, 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와 기회를 공유하는 것을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레아 완디라(25), 아프리칸 호프 재단(HFAW) 활동가
“제게 페미니즘은 ‘집단적 책임’(Collective Responsibility)입니다. 젠더 문제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정치·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결부되어있는 문제입니다. 성평등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프리칸 호프 재단은 케냐 곳곳에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성평등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 재단)
캐서린 차차(28), 간호사, ‘스마일링 차일드’ 활동가
“저에게 페미니즘은 ‘평등’을 의미해요. 여성들이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고,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여성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일링 차일드’는 케냐 남서부 케한차 지역에서 20여명의 보건의료인들이 모여 반 에프지엠 활동등의 여성인권활동을 하는 단체)
사라 하산 물라타(34), 진보적 변화를 위한 이니셔티브(IfPC) 활동가
“제게 페미니즘은 ‘진보’(Progressive) 입니다. 더 나은 교육, 더 나은 사회 서비스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도 헌신하는 일입니다.”
(‘진보적 변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는 케냐 북부 말사빗 지역에서 활동하는 풀뿌리 비영리 기관. 에프지엠 반대 등 여성 인권 활동, 지역 은행 운동 등을 진행함.)
시실리아 네꾸아(23),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 활동가
“페미니즘은 개인의 성취가 ‘성별’이 아닌 ‘노력’으로 축하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사디아 후세인(31), ‘다야 위민 그룹’(DWG) 활동가
“페미니즘의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는 바로 여성의 경제적 임파워먼트라고 생각해요. 모든 영역이 비슷하지만 특히 남성들이 주도권을 가진 경제 영역에서 여성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입니다. 성평등은 여성들이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립한다는 말과 같아요.”
(‘다야 위민 그룹’은 케냐 티나리버 현 지역에서 활동하는 반 에프지엠 활동 단체. 20여명의 에프지엠 생존자들이 활동가로 일하고 있음.)
왼쪽부터 쿠리아 지역의 여성 청소년인 리디아 존(13), 플로렌스 안데시아(12), 프리다 위타(15). 미스차나 임파워먼트 쿠리아(MEK)의 나웨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에프지엠을 겪지 않았다.
“엄마는 에프지엠을 했어요. 그게 나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랑 동생 3명 모두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비행기 조종사가 돼서 다른 나라에 많이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도 갈 거에요.”(리디아)
“MEK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좋아요.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어서 법원에서 일하고 싶어요.”(플로렌스)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에프지엠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싶어요.”(프리다)
왼쪽부터 쿠리아 지역의 여성 청소년인 크리스틴 로비(13), 마우린 므이타(13), 아비가엘 기시리(13), 저스티나 벤슨(13). 게커미리 마을에 사는 이들은 친한 친구들로, 모두 나웨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에프지엠을 겪지 않았다.
“저는 나중에 커서 간호사가 되는게 꿈이에요.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 굶주리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요.”(크리스틴)
“주변에 에프지엠 한 친구들 보면 슬퍼져요. 피도 많이 흘리고 아프니까요. 커서는 케냐 총리가 되고싶어요. 케냐에서 총리는 남자밖에 없었거든요.”(마우린)
“저는 커서 변호사가 되는게 꿈이에요. 여성과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아비가엘)
“저는 할머니가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에프지엠을 하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3년 전에 에프지엠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바로 그만 두셨어요.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꿈은 케냐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되는거에요. 여성대통령이 대변할 수 있는 여성들의 문제가 있잖아요.”(저스티나)
쿠리아/글·사진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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