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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8 15:19 수정 : 2018.10.28 20:54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27일 오후 1시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당당위’ 집회 참가자 300여명 중 14명 심층 인터뷰
“남녀 갈등 문제 아니라 무죄 추정 무너진 것이 문제”
입 모아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
“한남의 발악이라 치부하기보다 혐오 위험신호로 봐야”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27일 오후 1시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1만5000명이 나온다고 예고했던 집회에 최대 인원 300여명(27일 오후 4시 기준)만 나왔다. 경찰이 집회 대응을 위해 6개 중대 600명을 동원했다가 곧 2개 중대 200명으로 줄일 정도였다. 집회 주최 쪽은 경찰에 “(여성들의 불법촬영 편파판결 규탄시위인) ‘불편한 용기’처럼 왜 우리는 경찰 병력이 많이 와주지 않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2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앞에서 열린 ‘곰탕집 성추행 유죄 판결 비판’ 집회 얘기다.

이날 집회를 개최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가 비판하고 있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한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만졌다는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받은 사건이다. 해당 남성은 지난달 초 1심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사건은 피고인의 아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남편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했다. 당당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8일 만들어졌다. 27일 현재 당당위 카페엔 6460명 가입돼 있다.

일각에선 예상보다 적게 나온 인원을 두고 당당위와 집회 참가자들을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할 수 있을까. 문제는 지난 6월 말 제주도 예멘 난민 반대 집회처럼 직접 거리로 나와 극우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던 극우적 목소리가 실제 거리로 나오는 순간, 이 현상은 또 다른 사회적 쟁점이 된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에 대한 혐오를 확산하고 있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에 대해 다룬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가 처음 나왔을 때 일본의 언론들, 지식인들은 마치 넷우익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거나 주변화시키면 금세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재특회는 더욱 날뛰었다. 이들에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 14명을 따로 만나 이들이 어디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해 정보를 접했는지,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인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에 관해 물어봤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27일 오후 1시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가 집회 현장에서 만난 14명의 시민들은 50대 남성과 30대 남성 1명을 빼면 모두 10대(2명)와 20대(10명)였다. 남성이 9명, 여성이 5명이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각각 1명이었고, 대학생이 6명, 취업준비생이 2명, 무직 2명, 회사원과 자영업자가 각각 1명이었다.

이들의 얘기에서 우선 눈에 띄는 건 이들이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해 정보를 접한 곳이 언론 보도보다는 주로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점이었다. 14명 가운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유머 커뮤니티인 ‘웃긴 대학’이나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 축구 게임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에서 접했다고 밝힌 이가 9명이었다. 페미니즘 비판 영상을 주로 제작하는 ‘이슈베어’(구독자 수 미공개. 누적 조회 수 5815만)나 최근 ‘혜화역 시위’ 비판 방송을 했던 ‘마재 TV’(구독자 63만여명) 등 이슈를 정리해주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는 이도 3명 있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건을 접했다는 이는 2명밖에 없었다. 언론 보도보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확증 편향 성향이 높은 곳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들은 집회에 나온 이유에 대해 입을 모아 “이 사건은 남녀 갈등 문제가 아니라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 문제”라며 사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아울러 이들은 최근 페미니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강화하면서 법원이 과거보다 관련 사건에 대해 엄벌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 사건이 “남녀 갈등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최근 이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법이 한쪽 편을 들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중립, 공정에서 어긋나는 거죠. (법원이) 여자 편에 서서 남자가 잘못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법의 중립성이 잃었어요. 죄를 지었으면 명확히 밝히는 시스템이 필요하죠. 시스템을 가지고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 피의자에 대한) 6개월 형은 쎄요. 예전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어요.”

“저는 성평등주의자에요. 여자가 차별당하는 것 인정합니다. 그 불만도 이해해요. 인권운동해도 되죠. 다만 남자가 당하는 차별이 있어요. 남자만 군대 가는 것도 차별이죠. 군대에서 다치면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다쳐서 보상 못 받아도 별 관심이 없죠. 남자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차별입니다. 힘든 거 있으면 남자에게 시키잖아요.”

-인터넷을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24살 대학생인 남성 최아무개씨

“(이번 사건은) 제대로 성추행을 하는 영상이 포착된 적도 없는데 최근 페미니즘 여론과 여성 여론이 격화되다 보니 사법부나 나라에서 왠지 부적절한 처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남성들에게.”

“제 주변에도 페미니즘에, 래디컬에 푹 빠졌다가 설득하고 때리고 빌고 그래서 페미니즘에서 벗어나게 해 준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도 그런 식으로 얘기해요. 그 안에서 이데올로기, 프로파간다 안에 갇혀있을 때는 (잘 몰랐던 거죠).”

-'웃긴 대학'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23살 대학생인 여성 정아무개씨

“이번 집회는 남녀 간 분란을 일으키기 위한 시위가 아니라, 유죄 추정을 무죄 추정으로 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집회에요.”

“페미니스트 집회를 실시간 생중계해줘서 그걸 본 적이 있는데, 좀 많이 과격하고 피켓 구호 보면 좋지 않은 언어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일베가 쓰는 언어를 자기네가 받아서 쓴 언어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선 저쪽에서 잘못한 걸 이쪽에서 똑같이 베껴 쓰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유튜브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29살 무직인 남성 이승철씨

“판결문을 보면 여성의 진술이 구체적, 일관적이라 판단하고 있어요. 하지만 구체적, 일관적 진술은 주관적인 것이죠. 증거물로 제시한 CCTV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해본 건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진술로만 판결을 내렸다는 생각이에요.”

“페미니즘은 영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집회에서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이제 여자들은 의무는 지지 않고 권리만….”

-‘보배드림’ 커뮤니티에서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28살 취업준비생인 남성 구아무개씨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한 익명의 변호사 글이라든가 이런 걸 보면 성범죄에 있어서는 최근 들어서 상당 부분 유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어요. 판결문만 보고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죄 추정으로 보이게 쓴 판결문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란 단어와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사회의 수많은 갈등이 남녀갈등 이 두 가지에 전부 흡수돼 버렸어요. 지금 이 집회도 주장하는 게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주인데 이거에 대한 많은 관심사는 남녀갈등으로, 남녀갈등이란 프레임과 그 갈등으로 모든 게 흡수되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유효한 사회에 대한 비판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뭐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페미니즘으로 모든 걸 재단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임 커뮤니티 ‘에펨 코리아’에서 사건에 대해 접했다는 28살 자영업자 남성 김호종씨

“법 격언에 이런 말이 있어요. 참새를 잡기 위해서 대포를 쏘지 마라. 모든 법은 자기가 지은 죄만큼 형평에 맞게 벌을 받아야 해요. 더구나 이 사건은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증거도 없는데 한 사람의 진술만 갖고 이렇게 실형을 때리잖아요.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됐는데 이 사건뿐만 아니라 비일비재하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그게 문제죠. (그런 사례가) 기사 뭐 이런 것도 많이 있고, 카페나 보배드림에도 소개되어 있어요. 유튜브에도 그런 게 나와요.”

“아홉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건 우리나라, 세계에서 지켜온 인권의 기본이에요. 그게 무너지고 있어요. 여성부나 이런, 쉽게 말하면 페미니즘 그 사람들의 말이 세상을 지배하다 보니까 왜곡돼가고 있어요.”

-‘보배드림’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통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55살 무직 남성 김아무개씨

“요즘 사법기관이 자기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곰탕집 사건 말고도 부당하게 피해를 받으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나왔어요.”

“최소한 예전 옛날 그 뭐냐 빨갱이들 심문할 때도 자백은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자백도 없이 오로지 여성분의 증언만으로 6개월이란 판결을 받았다는 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죠.”

“페미니즘은 제대로만 됐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좀 억측이 많긴 하잖아요. 예를 들면, 페미니즘 시위에서 여경을 늘려야 한다든지, 여성 경찰청장을 뽑아야 한다든지. 여경이 늘면 사무직 쪽으로 많이 빠진다고 들었거든요.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요.”

-‘보배드림’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을 접했다는 20살 대학생 남성 박아무개씨

“법은 평등해야 하고 무죄 추정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지켜지는 게 너무 말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당연한 게 안 지켜지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서 참가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게 그거 ‘피메일’(female)에서 나온 단어잖아요. 그런데 굳이 여자 인권을 높여서 그걸 하고 싶으면 그거 말고 ‘이퀄’(equal)이란 말도 있잖아요. 다 같이 평등하게. 그래서 저는 그들의 의도 자체가 여성 인권을 위한 게 아니라 여성 인권을 명분 이유 삼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거라고….”

-‘유튜브’를 통해 사건을 접했다는 18살 고등학생 여성 이아무개씨

“페미니즘은 이론적으론 성차별 없이 남녀 똑같이 대우를 받자는 운동이었어요, 맨 처음에는. 그런데 지금의 자칭 페미니스트가 하는 일이나 유튜브를 보면 여성우월주의 집단이 된 거 같아요. 무조건 남자를 혐오하고. ‘한남충’이란 단어도 생겼잖아요. 자기네들이 뭐 김치녀나 그런 비하 발언을 들었다고 자기네들도 그런 걸 만들면 미러링이라고 하잖아요. 그 똑같이 혐오스러운 짓을 하는 건 똑같은 벌레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갖고선 나는 김치녀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모든 우리나라 남자들은 한남충이다 이런 얘기 자체가 저는 이해가 안 되고요.”

“너무 언론도 그렇고 우리나라 높으신 분들도 다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니까….”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에 대해 접했다는 26살 취업준비생 여성 차아무개씨

집회 참여자들의 발언이 이렇게 유사한 패턴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한국, 남자>라는 저서를 펴낸 문화비평가 최태섭씨는 “현장에 나온 시민들의 발언을 보면, 현실에 대해 매우 편향되면서도 동시에 놀랄 만큼 비슷한 의견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들이 같은 출처로부터 나오는 정보만을 공유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실제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가짜뉴스는 최근 개인방송이나 유사언론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그 원인을 엉뚱한 대상으로 돌리면, 그것에 맞는 편향적이고 조작된 정보들이 어디선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식”이라며 “이는 사람들이 단순히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믿고자 하는 현실에 맞는 정보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그 세계를 공고화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인터넷과 SNS 등에서 이번 집회를 두고 1만5000명 나온다고 하고선 고작 300명 나왔다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과소평가할 일만은 아니다. 재특회도 처음에는 몇십명이 오프라인에 모여 직접 행동을 시작한 뒤 동조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면서 점점 더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했다”며 “재특회가 평범한 일본인들의 박탈감과 불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증오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면, 냉전 논리가 과거처럼 먹혀들지 않는 ‘민주주의 이후’ 시대, 양극화가 극심하고 경쟁 압력이 커진 한국 사회도 사람들의 불만이 새로운 언어로 해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주장으로 서로 적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럴 때 진짜 적인 권력과 싸우는 것은 어렵고 힘들지만 여성과 난민, 이주노동자와 동성애자를 공격하는 건 너무 쉽고 큰 효능감을 준다”며 “이번 시위를 한남들의 찌질한 발악이라는 식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 전체에 ‘만인의 만인을 향한 적대와 혐오’가 분출하는 위험신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사회적 불만들을 적절히 언어화하고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훈 장수경 장예지 이정규 이준희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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