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9 19:31
수정 : 2018.10.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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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 같은 사건이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실로 발생했다며 재발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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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인식에 출동해도 소극 대응
‘접근금지 명령’ 해봐야 어기면 그만
여성단체 회견 “국가 강력대응하라”
반의사불벌죄 폐지·체포 우선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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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 같은 사건이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실로 발생했다며 재발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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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은 ㄱ씨와 여섯살 아들을 기어이 다시 찾아냈다. ㄱ씨가 지난 9월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에서 퇴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소송 중이었던 ㄱ씨는 ‘주민등록 열람 및 등초본 교부 제한’과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남편은 ㄱ씨의 도장을 도용해 아들을 자신의 주소로 전입신고하면서 ㄱ씨의 집주소를 알아냈다. 남편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하자 ㄱ씨는 다시 쉼터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
ㄱ씨처럼 숨지 못한 피해자 중 일부는 목숨까지 잃는다. 이혼하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이사해도 가정폭력 가해자의 추적과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일어난 서울 강서구 등촌동 주차장 사건도 ‘예고된 가정폭력 살인’ 사건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690개 여성단체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9년간 최소 824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됐다고 밝혔다.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대상 범죄가 몇 건이나 되는지 국가의 공식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가정폭력을 ‘집안일’이라 여기는 인식도 여전하다. ‘예고된 살인’이 계속되는 이유다.
■ 어기면 그만인 ‘접근금지명령’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해도 격리나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가 취해진 건은 100건 가운데 0.4건 뿐이다.” 이날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밝힌 가정폭력 처벌 실태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사범 16만4020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1632명에 불과했다. 반면 가정폭력 재범률은 같은 기간 4.1%에서 8.9%로 2배 이상 늘었다. 또 가정폭력사범의 기소율은 8.5%(2016년 기준) 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대신에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해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다.
피해자가 기댈 법적 수단은 ‘접근금지 신청’정도다. 김수정 변호사는 “피해자가 받는 ‘접근금지 신청 안내서’가 마치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긴급임시조치’나 ‘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통해 가해자를 주거지로부터 퇴거시키거나 피해자의 집과 직장의 10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이를 위반한다고 해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그치는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주민등록열람을 제한하는 등 피해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예고된 살인’, 단서부터 막아라
전 남편, 전 남자친구의 폭력은 기습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감시나 위협과 같은 ‘스토킹’은 처벌제도가 놓치는 중요한 단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스토킹이 상습 반복되면 가해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별 직후부터 폭력이 발생하기 전까지 처벌 ‘공백’ 기간부터 엄정하게 대응해야 ‘예고된 살인’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에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5건 발의돼 있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해 사건’처럼 혼인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사각지대다. 김재련 변호사는 “데이트폭력은 접근금지와 같은 임시조처를 할 수 있는 조항조차 없다. ‘가정폭력처벌법’에 규정된 가족 범위를 헤어진 연인 사이까지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미네소타주 가정폭력법은 법 적용을 받는 대상을 배우자뿐만이 아니라 ‘현재 함께 거주 중이거나 과거 함께 거주했던 사람’, ‘유의미한 연애 관계나 성관계에 관련된 사람’까지 포괄하고 있다.
■ ‘가정의 평화’ 대신 ‘피해자 보호’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강서구 소재 한 카페에서 가정폭력으로 어머니를 잃은 세 자매를 만나 위로하고,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처럼 ‘체포우선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대안으로 꼽힌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선 ‘추정구속제도’를 둬 현장에서 폭력이 없더라도 경찰이 추정해 폭력이 있었다고 인정되면 가해자를 체포해 조사할 권한을 부여한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걸 목표로 하는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로 바꾸고,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할 필요도 있다. 현재 국회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박다해 황예랑 신민정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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