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 지난 7월에도 인천 구월동의 주택가에서 별거 중인 남편이 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살해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3월 가정폭력을 겪고 ‘쉼터’를 찾아온 여성들의 좌담회 열었다. 모두 6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들이 증언하는 가정폭력의 실상이다.
폭력이 몸에 배어 저항하지 못했다
결혼 12년차 가정폭력 피해 여성 해나(가명)씨는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서울에 왔다”고 했다. “가까이 있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경찰에 전화한다는 건 생각도 안 해 봤고, 어떻게든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일 많이 했던 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을 다 듣고 있으면 미칠 정도”였기 때문인데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남편은 이런 해나씨를 또 때렸다. “특히 안 보이는 곳만 때려요. 사람이 몸은 아픈데 표는 안나고, 밖에 나가면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되고, 사람이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제가 제 자신을 보는 자체가.” 친정도 시댁도 아무도 몰랐다. “몸에 밴다고. 각인되듯이. 저 사람한테 대항을 못 했어요.” 계속 눈치만 보고, 밖에 나가서 표를 낼 수도 없고, 해나씨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나간다”고 친정에 문자를 보냈다.
현행범인 남편은 2시간 만에 풀려났다
“아들이 신고를 했어요.” 붉은노을(가명. 결혼15년차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경찰이 와서 문을 똑똑 두드리더라구요. ‘아무일 없다’고 남편이 말했어요. 내가 막 ‘맞았다’고 하니까 경찰이 병원에 데려다주고 끝내버리더라구요.” 남편의 접근을 막는 조치는 없었다. ‘쉼터’로 오기 전 남편이 새벽에 다시 때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힘들게 일하고 술 마시면서 접대하는지 아냐”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살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 어느 집에서 신고를 했다. 경찰하고 119가 같이 왔다. 종합병원에 실려갔다. 뇌출혈까지 있어서 담당 형사가 병원으로 왔다.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붉은노을은 “접근 금지 가처분과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범인데도 불구하고 2시간 만에 경찰서를 나왔다고 했다. 접근금지가처분은 법원에서 2주 후에 판결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너무 무서워하다가 쉼터에 입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전 붉은노을님 아들입니다. 어머니가 짐을 챙기고 계실 때 그때 어려가지고 다신 안 돌아올 것 같고 그래서 꾀병을 부리고 가지말라고 하기도 했었는데요. 한때는 정말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고 있나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하지 않구요. 어떤 일이든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은 범죄입니다.”
주변에서 ’도움 필요하면 말하라’고 알려줘야
방청을 온 한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제 딸이 ‘엄마 도와달라고 해’ 이 말을 했어요. 그 말을 할 도 저는 도와달라는 말을 못했는데 다음 날 다시 폭행이 이뤄져서 제가 문자로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딸이 달려오고, 아들이 달려와서 제가 혼자서 자립할 수 있는 이 상황까지 왔어요. ‘정말로 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달라는 말을 해달라.’ 이 말 한 마디는 (가정폭력을 당하는)엄마들한테 (주변에서)꼭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에스더(가명. 결혼 13년차 가정폭력 피해여성)씨도 주변에 알리는 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친 여자가 보따리 하나 들고 다니는데, 되게 귀중하게 안고 다니는데, 보따리 풀어보면 거기에 썩은 고구마랑 다 찢어진 옷밖에 안 들어있는 거 그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2017년 한해 동안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살해 당한 여성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85명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은 관련법에 따라 설치된 상담소를 통해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긴급전화 1366, 안전Dream 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117, 건강가정지원센터 1577-9337,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644-7077 등입니다. 한국어에 서툰 결혼이민자의 경우에는 다누리콜센터(1577-1366)를 통해 여러 나라의 언어(베트남어, 중국어, 타갈로그어, 크메르어, 캄보디아어, 우즈벡어, 몽골어, 러시아어, 태국어, 일본어, 영어, 네팔어, 라오스어)로 상담을 받거나, 통역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획·연출 조소영피디 azuri@hani.co.kr
자료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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