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2 18:36
수정 : 2018.11.22 21:40
|
2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지난 9월 29일 낮 12시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의 폐지를 요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200여명의 여성이 하얀 손팻말을 머리 위로 들어 ‘형법 제269조’를 상징하는 숫자 ‘269’를 만든 뒤 붉은 천으로 덮어 해당 법 조항 폐지의 뜻을 표현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여연 ‘자, 이제 재생산권이다’ 토론회
“태아의 생명권, 낙태죄와 난임치료 논할 때 다르게 적용”
“‘안전한 임신중단’ 권리에 대해 논의해야”
|
2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지난 9월 29일 낮 12시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의 폐지를 요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200여명의 여성이 하얀 손팻말을 머리 위로 들어 ‘형법 제269조’를 상징하는 숫자 ‘269’를 만든 뒤 붉은 천으로 덮어 해당 법 조항 폐지의 뜻을 표현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형법상 낙태죄 폐지 여부를 논의할 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종종 대척점에 놓인다. 하지만 이 같은 대립구도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얼마나 선택적으로 적용하는지, 인구조절정책을 위해 여성의 몸을 어떻게 출산의 도구로 활용해왔는지를 지워버린다. 임신 중단에 대해 논의할 때 여성의 건강을 ‘재생산권’이란 보다 주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22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자, 이제 재생산권이다’ 토론회에서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협소한 프레임 안에서 진행돼 온 낙태죄 관련 논의는 허구”라며 “‘국가가 불가피하게 임신을 중단한 여성만을 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낙태죄 찬성의 주요 근거가 되는 태아의 생명권은 난임치료 앞에선 힘을 잃는다. 최현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책 <배틀그라운드>에서 “국가의 막대한 예산으로 행해지는 난임 지원사업에서는 수많은 배아가 폐기되며 심지어 착상에 성공한 배아에 대해 ‘선택적 유산’이 실시됨에도 불구하고, 체외수정을 통한 임신의 과정에선 생명의 연속성이나 생명의 박탈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이 논의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저출산 해결’이란 국가적 과제 앞에선 필요에 따라 생명권을 박탈하는 일도 허용되는 셈이다. 생명권을 둘러싼 이러한 이중성은 국가가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걸 방증한다. 여성이 건강권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낙태죄 폐지가 필수적인 이유다.
김민문정 상임대표는 “낙태죄는 (‘인구 증가’라는) 국가의 목표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을 응징하거나 (출산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료영역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 운동은 단순히 임신 중단에 대한 찬반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낙태죄 폐지 여부를 논의할 때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기준으로 하는 ‘안전한 임신중단’이 핵심이 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생명 경시 풍조 때문에 낙태가 만연하다’는 전제에 기반한 ‘낙태 금지’ 정책으로부터 원하지 않는 임신의 예방과 ‘안전한 임신중단 지원’으로 국가의 정책적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임신 중단 약물을 지원하는 것, 임신 중단 관련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 취약계층에게 관련 약물이나 수술비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임신·출산을 위한 인프라의 분포와 시사점’ 연구를 보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은 서울의 경우 1.1km인데 반해 군 단위의 지역에선 최대 24.2km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올해 3월 한국정부에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인해 합병증을 겪을 경우를 포함해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게 양질의 수술 후 돌봄 체계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