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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3 14:02 수정 : 2018.11.23 20:59

한 연극인이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2월 19일 오전 서울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연 성추행 사과 기자회견에서 당사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선 2016년 해시태그 성폭력 고발 운동과 올해 ‘미투’ 이후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방지 조항을 의무화할 것을 요구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땐 명문화 의지
위탁 법인은 “미술품 매매계약서에 담기 어려운 조항”
예술계 “논의 도중 갑자기 조항 사라져…모든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 연극인이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2월 19일 오전 서울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연 성추행 사과 기자회견에서 당사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선 2016년 해시태그 성폭력 고발 운동과 올해 ‘미투’ 이후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방지 조항을 의무화할 것을 요구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가 마련중인 예술인 표준계약서에 ‘성희롱·성폭력 방지’ 조항을 의무화하는 정책이 진통을 앓고 있다. 성범죄 방지 조항을 표준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최소한의 조처라는 예술계와 규범적인 내용까지 계약서에 모두 담기 어렵다는 일부 법조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예방 및 문제발생 시 계약해지 등을 포함한 관련 조항 명문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문화예술연합과 여성예술인연대는 23일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을 문화체육관광부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달 전 공개된 초안엔 포함됐던 성범죄 방지 조항이 정작 지난 15일 발표 때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표준계약서 마련을 위탁받은) 법무법인 세종이 9월 비공개 간담회서 공유한 ‘작가와 화랑 간 전속계약서’에는 성범죄 방지 조항이 있었는데 정작 15일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된 표준계약서엔 (해당 조항이) 빠졌다”며 “문체부는 업계가 반발해 설득 중이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표준계약서에 성범죄 방지 조항을 넣는 일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된 2016년 이후 예술 현장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사안이다. 올해 ‘미투’ 고발 이후 문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꾸린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도 지난 6월 “성희롱·성폭력 등의 예방조치가 포함된 표준계약서 마련”을 주요 정책과제로 발표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세종 쪽은 관련 조항을 모든 종류의 계약서에 넣을 경우 작성단계에서 난항을 겪을 수 있단 입장이다. 임상혁 변호사는 “계약서는 당사자 간에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것”이라며 “개인의 인격권 같은 조항을 다 넣기엔 체계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가령 미술·사진 모델 계약서엔 성범죄 방지 조항을 넣을 수 있지만 ‘작품 매매 계약서’나 ‘건축물 미술작품 계약서’ 같은 경우엔 계약 성격상 관련 조항을 넣기 어렵단 설명이다. 임 변호사는 다만 “성희롱·성폭력을 계약 해지 사유에 넣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현장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작가들은 예술 현장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작가들은) 작품 매매나 화랑과의 전속계약을 미끼로 술자리에 불려가 성추행을 당하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들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법무법인은) 예술인의 창작 환경과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매수자 입장에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가 많은 업계 특성상 창작자 개인이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표준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과 여성예술인연대는 20일 낸 성명에서 “표준계약서는 예술시장의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을 제시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예술가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공개된 계약서는 확정안이 아닌 초안”이라며 한 발 물러났다. 강정원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은 “미술과 공연예술분야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방지 문구를 넣는 기조는 변함없다”며 “올해 안에 새롭게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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