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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7 20:39 수정 : 2018.11.27 23:58

10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 같은 사건이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실로 발생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 ‘가정폭력 방지대책’ 발표
가정폭력 가해자 현행범 체포 등 처벌강화 담아
여성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반의사 불벌조항 폐지 필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해야 시행 가능…관건은 국회 심사

10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참가자들은 최근 발생한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 같은 사건이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실로 발생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앞으로 경찰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어기면 지금처럼 과태료만 부과받는 것이 아니라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처벌을 받는다.

여성가족부·법무부 등은 27일 이런 내용의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입법을 추진한다. 정부가 ‘제2의 강서구 가정폭력 살인 사건’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통과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날 대책의 핵심은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대처와 처벌이다. 지금까지 경찰은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거나 폭력행위를 제지하는 데 그쳤을 뿐 가해자를 체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앞으로 흉기를 사용하거나 상습적인 가정폭력 가해자는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자녀와 만나는 과정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2차 범죄를 막도록 가해자의 자녀 면접 교섭권도 제한한다. 경찰 직권으로 결정하는 긴급임시조치에는 가해자를 유치장에 가둘 수 있는 방안을 추가했다.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은 피해자 거주지나 직장 등 ‘장소’가 기준이 아니라 피해자나 가정 구성원 등 ‘사람’을 기준으로 변경한다. 실질적인 보호를 위한 조처다. 피해자 보호 범위도 넓혔다. 가정폭력 유형에 ‘주거침입·퇴거불응’과 ‘불법촬영·유포’를 추가하고,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 이용자도 주민등록표 열람과 등·초본 교부 제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분리 조치를 한 뒤에도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의 거주지를 찾아내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강화했다.

정부가 피해자 자립도 돕는다. 피해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피해자의 특성을 반영한 전문 자립프로그램이 내년부터 3~4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된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이들에겐 1인당 500만원 안팎의 자립지원금을 지급하고,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폭력피해 이주여성 전문상담소’를 5곳 신설한다. 정부는 가정폭력이 더 이상 ‘집안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인식 개선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여성단체들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폐지되지 않은 점 등을 우려했다.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이 제도는 가해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런 탓에 가정폭력사범 기소율은 8.5%(2016년 기준)에 그친다. 정부는 이날 기소유예 처리 기준을 강화한다는 방안도 냈지만,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팀장은 “다른 범죄와 달리 가정폭력 범죄에만 이 제도를 둘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반대하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가정폭력처벌법의 ‘반의사 불벌’ 조항 폐지도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가정폭력 특성상 피해자가 완전히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필요하면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라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 시행 시기는 국회에 달려 있다. 가정폭력 대응 매뉴얼 마련, 피해자 상담과 보호, 자립지원 등은 행정절차를 통해 바로 추진할 수 있지만, 현행범 체포나 면접교섭권 제한 등은 법을 개정해야 시행 가능하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관련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18건이 발의돼 있지만 2년 넘게 제대로 심사된 적이 없다. 김현원 여성가족부 권익보호과장은 “법무부도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관련 법안이 신속히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 위원장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정폭력을 줄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국민 정서를 충분히 안다”며 “올해 안에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해 논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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