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8 17:31
수정 : 2018.11.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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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성소수자 교육 및 고용차별,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징계 대학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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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 인터뷰
“장신대, 무지개깃발 들었다고 정학 등 징계”
“학교 내 성소수자 존재 많이 드러났지만 혐오발언도 심해져”
“국가기관의 묵인이 혐오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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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성소수자 교육 및 고용차별,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징계 대학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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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지난 5월 17일 신학대학원생 5명이 성소수자를 지지하기 위해 무지개색 옷을 맞춰입고, 무지개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정학, 근신 등 징계를 내렸다. 이날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올해 신입생부터 ‘반동성애 입학 서약’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반하면 언제든지 징계나 정학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호남신학대학교도 내년 ‘입학자격 및 입학시험 응시 자격’으로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가 아닌 자’를 명시했다.
혐오와 차별이 학칙이 됐다. 지난해 열린 102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는 총회헌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총회는 교단 소속 7개 대학교에 이 같은 결정 사항을 지시했다. 지난 9월엔 “동성애자와 동성애 행위를 조장하거나 교육하는 자는 교단의 목사고시를 치르지 못하도록 한다”는 청원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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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가 발표한 ‘동성애 문제 관련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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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4개 대학의 71개 모임이 연대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QUV)는 28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이 개인의 성적지향을 입학과 제적의 기준으로 두는 것은 평등권을 훼손하는 명백한 차별행위이자, 민주시민에게 양심에 따른 신념을 검열하도록 하는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개인의 성적인 정체성과 인권은 어떤 대학이나 종교, 국가도 제한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며 학교 쪽의 징계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비단 신학대만의 일이 아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캠퍼스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 큐브의 박기진 행정팀장과 창구 외부협력팀장을 기자회견을 앞둔 26일 서울 마포 <한겨레>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학내에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된 만큼이나 그들을 향한 혐오발언도 공개적으로 더 쉽게 튀어나온다”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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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소속 창구 외부협력팀장(왼쪽)과 박기진 행정팀장(오른쪽)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대학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성소수자 검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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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처음 연세대와 서울대에서 성소수자 동아리가 생겼을 땐 동아리원을 모집하려고 학교신문에 홍보하는 것조차 거절을 많이 당했다고 해요. 지금은 에스엔에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 문화가 혐오발언의 통로가 됐어요. (대학교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만 봐도 그런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캠퍼스에서 플래카드를 걸면 찢기고, 대자보는 붙인지 몇 시간만에 사라지고요. 학교에서 트랜스젠더인 친구를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한 사건도 있었고, 결국 그 친구는 자퇴를 했어요.” (창구)
성소수자 동아리는 대학교 안에서 정식 동아리로 인증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지역의 한 대학교는 “우리는 인권의식이 발달하지 않아 (성소수자 동아리를) 정식으로 받아들여줄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고 했다. 정식동아리가 되지 않으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활동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공공연한 차별이나 혐오발언보다 더 넘기 힘든 산도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박기진씨는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자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지워버린다”고 했다.
“연대에서 학교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에 성소수자 인권을 함께 지지해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왜 대표성을 가져야 할 학생회가 퀴어 인권을 지지하냐’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게 마치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식으로요. ‘학생회가 나의 인권은 지지해야 하지만 성소수자는 지지하면 안된다는건가?’ 싶어요. 인권은 찬반을 나누거나 편을 가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요.” (박기진)
또 다른 산은 가짜뉴스다. 올바른 정보를 기반으로 대화를 나누는 공론장 자체가 없다보니 그 틈새를 가짜뉴스가 파고들었다. 왜곡은 또 다른 왜곡을 낳고,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창구씨는 “(성소수자나 동성애에 대한) 정보가 사실이 아닌데도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점점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지상파 토론프로그램에서조차 (성소수자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면서 방송을 하니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며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가지고 찬반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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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국가의 묵인과 방관이 소수자 혐오를 키우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장신대 사태에 대해 교육부에 진정을 넣어봤지만 “사립대학교의 학칙이나 운영사항은 교육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넣었지만 언제 논의될 지 요원하다. 국가가 침묵하는 동안 여론의 재판대에 올라서는 건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박기진씨는 되물었다. “HIV/AIDS에 대해 잘못된 통계나 정보가 있으면 질병관리본부에서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거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조항은 학칙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져내렸다. 박씨는 “교육의 수혜를 받는 학생들 가운데는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소수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대학이란 울타리에서 배제한다면 이게 정말 학생을 위한 학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난관을 헤쳐나가는 건 연대의 힘이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큐브는 참가자 3000여명과 행진을 함께 했다. 대학 내에서 어떻게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 수 있는지, 만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도 계속 들어온다. 큐브는 이번 부당징계에 대한 항의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 학교 내 성소수자들을 가시화하는 방향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열리는 인권 관련 행사들은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만 몰려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인권 조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퀴어문화축제를 혐오하는 분들의 폭력성도 지역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퀴어문화축제만 해도 서울에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올해 인천·광주·제주 등지에선 심각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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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를 덮치는 혐오의 파도 앞에서 홀로 버티는 일이 없기를, 큐브는 바라고 있다. 각 학교에 자치권을 행사할 수 없단 한계는 있지만, 대학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는 통로를 마련했다는데 의의를 둔다.
“한 동아리가 따로 목소리를 내는 것과 71개 모임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건 다르니까요. 대학 사회에서 계속 목소리를 함께 내고, 그 목소리가 더 커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연대할수록 강하다’라고 하잖아요.” (창구)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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