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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9 05:57 수정 : 2019.01.30 13:48

[미투, 용기가 만든 1년 ② ‘미투’ 세상을 바꿨다]

내가 이런 일 겪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두려워 않겠다’ 발언에 용기 얻어
다음 사람을 위한 용기로 이어져

“부당함 바꾸고 싶다는
의지이자 변화에 대한 희망”
이들은 피해자 아닌 생존자다

[미투, 용기가 만든 1년]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들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고발에 함께하겠다는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묵인해온 비뚤어진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제는 새로운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미투’에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들의 용기와 연대가 서로에게 이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11월 경기도 ㅅ골프장은 캐디(경기보조원) 1명이 고객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골프장 쪽은 그 손님의 골프장 출입을 완전히 금지했다. 이 고객이 포함된 단체팀 전원의 출입도 1년 금지했다. 나아가 “성희롱 발언을 할 경우 출입을 금지합니다”란 안내문이 출입구 전면에 붙었다. 늘 있어온 성희롱이지만, 이례적으로 단호한 대처였다.

ㅅ골프장 관계자는 “틀림없이 ‘미투’의 영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상 고객이 왔을 때 캐디 입장에선 바꿔달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다른 동료가 이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면 해서 (해당 캐디가) 용기를 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성희롱에 쉽게 노출돼온 캐디들이 자칫하면 해고의 빌미가 될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만 참으면 된다’가 아니라 ‘다른 동료에게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캐디들이 할 수 있게 된 건 미투의 영향이다.

최순임 전국여성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콜센터나 골프장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종종 ‘미투의 혜택을 우리가 본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나만의 경험’은 여성들의 말하기를 통해 ‘우리의 경험’으로 확장했다. “더는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에 틔운 싹이다.

“저보고 ‘아트비스트’(예술가와 운동가를 합친 말)래요.” ‘미투’는 평범한 이를 운동가로 변하게 했다. 지난해 2월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던 오태석 연출의 성추행을 고발한 박영희 연출가의 얘기다. 그는 지난해 스웨덴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을 이끈 배우 수산나 딜베르를 한국에 초청해 스웨덴의 미투 운동을 소개했다. 고발 이후 우울증이 심해져 떠난 스웨덴에서 우연찮게 ‘미투’ 운동 소식을 들었고, 어렵사리 딜베르를 소개받았다.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첫 만남에서 서로를 ‘시스터’(자매)로 부를 정도로 같은 답답함과 분노가 있었다.

공연계 생태계를 바꾸는 일은 그의 소명이 됐다. 2월엔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서울시성평등센터와 함께 ‘시카고 시어터 스탠더드’(CTS)를 만든 미국 배우 로라 피셔를 초대해 워크숍을 개최한다. ‘시카고 시어터 스탠더드’는 2015년 미국 시카고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배우와 연대자들이 함께 만든 일종의 ‘폭력·차별금지 규약’으로 “사람의 신체·옷·성별 또는 성적 지향에 대해 불쾌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동의를 얻지 않은, 부적절한 신체접촉은 하지 않는다” 등 상황별·역할별로 지킬 규율을 담고 있다.

자각과 연대도 ‘미투’가 가져온 또 다른 선물이다. 성폭력은 그동안 ‘피해자 없는 범죄’였다. 피해자는 숨고, 또 숨겨야 했다. 20대 여성 ‘데비’(닉네임)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추행·성희롱은 피해자가 먼저 지적하는 게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지적을 해주면 그제야 ‘내가 당하면 안 될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며 “‘미투’ 운동은 (지적을 해주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진 것”이라고 했다.

앞서 고발한 사람의 용기는 다음 사람을 위한 나의 용기로 이어졌다. ‘국회 1호 미투’를 했던 비서관 ㅈ씨는 “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용기를 냈던 것에 자극을 받았다”며 “나도 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미투’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비슷한 경험을 한 후배들이 고민을 토로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이던 부채감, 내가 고발하면 다음 피해자는 없지 않을까 하는 희망, 다른 누군가도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험난한 길이 예상되지만 그의 입을 열게 한 동력이다. 그래서 ‘피해자’ 대신 ‘생존자’나 ‘고발자’로 불러달라고, 이들은 말한다. “변화를 위해 말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투’ 생존자들을 보면 단순히 ‘내 피해가 이렇다’라고 보여주기 위해 말한 분들은 거의 없어요. ‘제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방점이 찍혀 있어요. 다수가 그래요.” 박영희 연출의 말이다. 잊고 싶던 고통을 끄집어내는 단 한가지 이유는 “부당함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와 변화에 대한 희망”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변화는 더디고 저항은 세진다. ‘미투’ 이후를 함부로 가늠하긴 어렵지만 이전과는 다른 운동장에 이들이 서 있다는 건 분명하다. 박씨는 “12라운드의 권투 시합에서 이제 2∼3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라고 했다. 여성, 장애인, 소수자라는 이유로 전쟁처럼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다시 전장에 나가겠다”고, 그는 다시금 숨을 골랐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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