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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9 18:12 수정 : 2019.01.29 18:55

[영상+] 28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전 인터뷰

“할머니, 이번에 할머니 책 만들어졌잖아요.”

“응.”

“할머니가 주인공이신거죠? 자기소개 한 번만 해주세요.”

“응. 나는 책 주인공 김복동입니다. 올해 나이는 93세. 피해자.”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인터뷰를 진행하던 <한겨레> 취재진과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80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살아온 고통과, 그 고통을 견뎌내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평화운동가로 살아왔던 할머니의 삶의 무게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일본군 ‘위안부’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맞춰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증언 소설이 출간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조용했던 쉼터가 오랜만에 떠들썩해졌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싫은 내색 없이 흔쾌히 취재진을 맞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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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고 계셨던 김 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할 땐 할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생전에 장학금을 후원하시던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해서는 “(내가)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장학금) 밑천이 닳을까봐 조바심이 난다”며 걱정하셨습니다.

“내가 만으로는 14살, 우리 나이로는 15살에 끌려갔거든. 한창 공부할 나이잖아. 그런데 공부를 못했죠. 그래서 내가 못한 공부를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애들 어떻게 하든지 공부를 시켜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본서 배상이 나오도록 기다렸거든. (그런데) 93살 먹도록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어. 그래서 한 아이라도 해보도 못하고 죽어삐면 어짜겠나 싶어서 다른 재산 딱딱 긁어 갖고는 밑천 삼아갖고 재단을 만들었지”

할머니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준 시민들에게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루빨리 회복되어가지고 어떻게 운동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될낀데, 자꾸 이래가 아파 드러누워갖고 걱정이야. 몸이 시원치 않아요. 엉뚱하게도 나쁜놈(병)이 내한테 붙어갔고.” 하루빨리 병이 나아서 수요시위에 나가고 싶다던 김 할머니는 6개월 뒤인 지난 28일 밤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당시 <한겨레>가 담은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요시위 나가는 것은, 국민들이, 진짜 국민들이 고마워요. 그러나 우리들만의 일이 아니라, 결국 만약에 전쟁이 났다하면 우리들 같은 일이 안난다고 할 수 없잖아요. 지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후원을 해줍니다. 고맙고. 미안한 것은 요새 날이 이래 덥구만은. 그래도 (사람들이) 다 나오는데 우리만 나이 많다고 안나가고 있다가보니 좀 미안해요. 나도 (집회에) 나가고 싶지. 나가서 빨리 나발로 불어야 무슨 일이 일어날 것 아닌가.”

취재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연출 위준영 피디 marco0428@hani.co.kr

▶영상 바로보기 https://youtu.be/MuUHC6CCSZk

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출간하는 김숨 작가(왼쪽부터)와 소설 주인공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증언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 모여 앉아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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