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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2 20:23 수정 : 2019.02.23 12:47

걸그룹을 국민투표 형식으로 선발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1 갈무리. 엠넷 제공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걸그룹을 국민투표 형식으로 선발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1 갈무리. 엠넷 제공

“방송은 특정 성을 다른 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다루거나 객관적인 근거 없이 특정 성의 외모, 성격, 역할 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최근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의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냐고요? 아니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입니다. 방송법 32조·33조는 티브이나 라디오가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공적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방심위가 심의하고, 그 규정에 “양성평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 법 조항이야말로 국가의 ‘검열’과 ‘규제’에 가깝지 않나요? 그런데 왜 아무런 강제력도 없는, 권고 수준의 여가부 가이드라인에만 유독 발끈하는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여가부를 출입하는 박다해입니다. 지난 13일 여가부가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거센 역풍에 부닥쳤습니다. 안내서의 부록으로 첨부된 ‘가이드라인’을 두고 일각에서 “국가가 검열한다”는 식의 반발이 제기된 겁니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며 음악방송 출연자의 외모획일성을 지적한 부분이 문제가 됐습니다. 여가부는 결국 일부 표현 등을 수정, 삭제하겠다고 19일 밝혔습니다.

물론 표현을 둘러싼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순 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해당 부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었다”며 “외모지상주의를 해소하고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예시는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 하나의 문항을 침소봉대하며 안내서 자체를 비난, 왜곡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은 연일 비난에 나섰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여자 전두환” “검열 독재”를 운운하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사소한 데 집착한다” “대중의 취향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합니다. <제이티비시>(JTBC)의 ‘정치부회의’는 한발 더 나아가 남성 기자에게 긴 머리 가발을 씌웠습니다. 뉴스·토론 프로그램 출연자의 성비불균형을 짚은 안내서의 내용을 거론하며 “저희는 극남초다. (남성 기자가) 여장을 하겠다”는 겁니다. 성평등을 한낱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런 태도의 문제는 우선, 방송이 보여주는 신체 이미지가 실제로 일정 부분 획일화돼 있고 이런 양상이 특히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온 현실과 맥락은 보지 못한 채, 이를 단순한 ‘취향’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지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특히 걸그룹에게 요구되는 ‘소녀다움’이란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선 극도로 날씬해야 하고, 이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이 틀에서 벗어나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사회가) 취급하는 것”이라며 “(1020 여성들이) 다이어트와 성형을 비롯한 꾸밈노동에 과도한 압력을 받는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잘못됐음을 자각한 젊은 여성들은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사회가 만든 틀을 깨고자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지은 칼럼니스트는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들이 논란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남성의 시선에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운동이 “자신들의 세계를 다 무너뜨릴 거란 위기의식을 과도하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또다른 문제는 성평등에 대한 고찰 없이 여성혐오적인 내용을 담은 일부 여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의 발언이 확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현 정부에 ‘20대 남성’이 등을 돌리고 있고, 그 이유는 이들이 현 정부가 여성 편을 든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식의 보도가 쏟아지자 이를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는 “(보수 정치인이) 정말 20대 남성을 생각한다면 징병제 등 그들이 처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려 하겠지만 그건 피하면서 남초 커뮤니티 일각에서 나오는 지엽적인 문제를 확산하고 있다”며 “20대 남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가부’란 공공의 적을 만들어놓고 ‘단결’하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만, 그래서 대체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요?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채 혐오로 장사하며 성별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 부끄럽진 않은가요?

박다해 사회정책팀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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