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4.05 13:00 수정 : 2019.04.07 15:32

[판을 바꾸는 언니들④] 대전 여성주의 잡지 <보슈> 권사랑 대표·서한나 편집장

‘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대전의 여성주의 잡지 <보슈>를 만드는 서한나 편집장(왼쪽)과 권사랑 대표. 이들은 여성주의 강연, 여성축구단 운영 등 각종 행사와 워크숍 활동을 함께 하며 대전의 페미니스트들을 연결하고 있다. 촬영=황금비 기자

대전시청을 찾았다. 지역 청년을 대상으로 ‘여성주의 글쓰기 강연’을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남자를 왜 배제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페미니즘 글쓰기 강좌는 어떨까요?” 물었다. “음…그건 괜찮지.” 야호!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여성주의 안 하고 페미니즘 하겠다”는,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웃픈’ 공언 덕에 지난해 대전시가 주최한 ‘대전 청년의 학교’행사에 ‘페미니즘 글쓰기 학과’를 개설하는데 성공했다. 능청스럽게 판을 벌인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전에서 여성주의 잡지를 만드는 팀 <보슈>(BOSHU)다.

‘여성주의’란 용어를 거절당하자 ‘페미니즘’하겠다고 들이밀었다는, <보슈>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픽=황금비 기자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을 나눌 때 흔히 물리적 인프라 차이를 떠올리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넓고 깊게 벌어져있는 간극은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한다는 건, 서울보다 더 높고 견고한 장벽에 끊임없이 부딪치는 일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젊은층은 서울행을 꿈꾸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페미니즘에 별 관심이 없다. <보슈>의 서한나 편집장은 페미니즘 글쓰기 강연을 연 일화를 소개하며 “(아직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의 개념조차 잘 모른다. 지역신문에 소개할 때도 ‘페미니즘’을 빼고 ‘글쓰기 강좌’로만 나갔다”고 했다.

“문화적 인프라, 페미니즘에 대한 온도 등 온갖 것들이 서울과 다르다고 느끼면서 슬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슈>는 계속 뛴다. 보폭을 넓힌다. “이곳에도 역시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지역청년을 위한 잡지로 창간한 <보슈>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아예 ‘여성주의 잡지’로 정체성을 바꿨다. 잡지를 만드는 건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여성, 지역, 청년, 성소수자 등의 눈으로 마주하는 격차에 대해 고민한다.

<보슈>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에디터, 디자이너, 사진작가 6명이 모여 비정기적으로 만드는 잡지다. 지역의 독립서점에서 판매하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아 펴낸다. 지난달 12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보슈>의 권사랑(26) 대표, 서한나(27) 편집장을 만났다.

#1.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한다는 것

―안녕! <보슈>가 11호까지 나왔더라고, 난 10호가 나왔을 때 텀블벅 후원으로 구입해서 정말 재밌게 읽었어ㅎㅎ 혹시 각자 가장 아끼는 호가 있어?

한나 아무래도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반영한 11호에 애착이 가는 것 같아. ‘여성의 몸’이 주제인데 특히 대전여성장애인연대의 이인원 성폭력상담소장님 인터뷰에 제일 마음에 들어. 서울에는 그런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지역의 상황은 아무래도 다르잖아. 여기에도 그런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지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알리고 싶었어.

“‘좋은 어른’들을 발굴하는게 우리의 목표”라고 서 편집장은 말했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묵묵하게 일을 해 오신 분들을 봤을 때 느껴지는 감동이 있어. 그들을 우리 또래와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사랑 나는 ‘여성인물특집호’로 꾸렸던 10호야. 10대부터 80대까지 대전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담았어. 특히 고등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는 여학생들을 만나 학교 안에 어떤 성폭력, 성차별이 있는지 물은 부분이 기억에 남아. 그 때는 대전에서 ‘스쿨미투’가 터져나오기 전이었어. 10호가 발간된 뒤 대전에서도 ‘스쿨미투’가 공론화됐거든. (우리의 역할이) 인터뷰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기자회견에서 함께 발언도 하고, 이후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참여하기도 했지.

대전에 사는 10대∼8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보슈> 여성인물특집호. <보슈> 제공

―서울과 지역의 온도가 다르다고 했잖아.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부딪치는 어려움은 어떤 거야?

사랑 여성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답답함을 느껴. 예를 들어 같은 축구 수업을 열어도 대전에선 겨우 참가자를 모았다면 서울에선 12시간 만에 60명이 모이거든. 페미니즘에 대한 반응과 수요가 엄청 차이난다는 걸 느끼면서 ‘여기서 어떻게 계속 해 나갈 수 있을까’하는 좌절감을 여러 번 맛봤어.

한나 똑같은 행사를 해도 서울에선 입장료 3만원을 받고도 모집이 끝나. 대전에선 8천원, 5천원 정도를 받아야 정원이 차고. (지역에선)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어떤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돈을 내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도 좀 있는 것 같아.

―그런 인식 차이가 왜 나타나는 걸까?

한나 아무래도 경험을 얼마나 풍부하게 해왔냐의 차이 아닐까 생각해. 물론 여기서도 적극적인 사람들은 교통비를 내고서라도 서울까지 가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오지만, 사실 대부분은 어떻게,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우리 주변에선 무언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나 시설이 (서울에 견줘) 워낙 적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어도 <보슈>의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은 어떤 건지 궁금해.

사랑 우리가 재밌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일들을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지역에서 우리 행사를 찾아주는 분들이 생겼어. “서울에서 왔어요.” “인천에서 왔어요.” 이렇게 말씀해주시거든. ‘아, 이런게 판을 조금씩 바꾸는 출발점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지. 지역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를 즐기는 건 당연하게 여기지만, 지역에서 좋은 행사가 있다고 하면 ‘아쉽다’, ‘못 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잖아ㅎㅎ 다른 분위기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슈>가 꾸린 여성축구단 ‘FC우먼스플레잉’의 훈련 모습. 운동장에서 ‘몸의 자유’를 비로소 담뿍 느낄 수 있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팀 이름은 ‘맨스플레인’(남성이 여성에게 불필요한 설명을 늘어놓는 일)에서 따왔다. <보슈> 제공

#2. 여성을 모으다. 틀을 깨다.

<보슈>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페미니스트들을 발견하고 연결하고 모으는 일을 함께 한다. 2017년엔 여성축구단 ‘FC우먼스플레잉’을 만들고, 지난해엔 여성주짓수팀 ‘오버셋’을 운영했다. 여성주의 강연과 페미운동회 ‘동분서주’를 개최했고, 성폭력의 공포없이 안전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성들만의 클럽파티도 열었다. “지역의 페미니스트 동료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일들이다.

―여성축구단 ‘FC우먼스플레잉’을 꾸린 점이 인상적이었어.

한나 페미니스트들끼리 조금 더 활동적인 걸 해볼까 고민하다가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축구를 해보잔 이야기가 나왔어. 2017년 겨울에 하룻동안 배워보는 ‘원데이 클래스’를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거야. 결국 지난해부터 정규반을 개설해 1년째 운영 중이지ㅎㅎ

사랑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는데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여자애가 공 차네’라며 웃곤 했어. 중·고등학교 올라가면서는 체육 선생님도 여자애들한테는 (힘든 운동을) 잘 안 시키고. 점점 내 몸을 쓰지 않게 된 거야. 그런데 축구를 다시 하면서 짜릿한 순간을 많이 만났어.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폐가 터질 것 같은 순간에도 경쟁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즐거운 거야.

여자들이 경쟁하고 이기기 위해 용을 쓰는 모습을 두고 ‘기가 세다’거나 ‘여자애가 이겨 먹으려고 든다’는 식의 이야기를 계속 듣잖아. 내 경쟁심을 보여줄 일이 전혀 없었는데 여성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서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쓸 수 있는 거야ㅎㅎ

턱 끝까지 숨이 차 내뱉는 숨소리와 약간의 몸싸움, 이런 치열함과 동지애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짜릿함이지.

한나 여성 청년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하다 주짓수도 시작하게 됐어. ‘몸을 써서 상대를 뒤집고 엎어쳐보는 운동을 해보자’란 이야기가 나온 거야. 일종의 ‘공격성’을 함양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ㅎㅎ 대전에 마침 여성관장님이 운영하는 주짓수 체육관이 있어 취지를 설명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 정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분들이 있어 ‘오버셋’이란 이름의 정규반을 만든거야. ‘뒤집어 엎다’, ‘전복하다’란 뜻이야.

여성의 몸은 대개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호명되고, 그 기준은 건강보다는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마저도 기형적일 정도로 똑같은 잣대를 요구하는 아름다움이다. 함께 모여 운동을 하는 경험은 이 틀을 깨는 과정이었다. 권 대표는 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몸’에서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몸’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내 몸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다.

사랑 여자들은 사실 달릴 땐 가슴을 신경쓰고, 팔을 들 땐 겨드랑이에 제모를 했는지 신경쓰고 하잖아. 축구를 한 순간부터는 내 다리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내 폐가 얼마나 오랫동안 호흡할 수 있는지등을 기준으로 몸을 바라보게 됐어. 사실 이게 당연한데 우리는 평생 자연스러움에서 배제돼왔던 것 같아.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능동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몸에 대해 남이 아닌 내가 주도권을 갖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한나 주짓수도 실제로 수업 들어가보면 몸의 원리를 잘 알고 난 뒤에 머리와 기술을 써서 하는 운동이더라고. 주짓수를 하면서부터 내 팔 길이가 어디까지인지, 내 팔에 근육이 어느 정도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고 내가 최대한으로 힘을 주면 상대는 얼마나 밀려나는지 경험을 했어.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 힘을 이용하고 몸을 써보는 학습과 훈련의 효과가 있는 운동 같아.

‘뒤집고 엎어치는’ 주짓수 도전은 ‘보여지는 몸’에서 ‘하는 몸’으로의 전복을 가능하게 했다. <보슈> 제공

#3. 나와 내 주변의 여성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

―글, 잡지, 강연, 행사 등 여러 활동을 통해서 ‘여성’이라고 정해져 있는 틀을 깨고 넓히는 것 같아.

사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모든 여성이 자기의 본성대로, 욕망대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그 모습 그대로 사는 거야. 음…구조적인 문제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 그런 부분을 짚어보며 나와 내 주변의 다른 여성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

한나 사람들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인을 주기 위해 ‘여성 원데이 클래스’, ‘여성주의 잡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최종적인 목표는 그런 것 없이도 여성들이 자유롭게 사는 거야. 지금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소위 ‘여성 문제’라는 것들이 성폭력·성매매 같은 건데 나는 사실 이건 남성 문제라고 생각해. ‘여성’이라는 말을 굳이 안해도 나답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꿈꾸고 있어. ‘여성, 여성, 여성’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론 그 꼬리표를 떼고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거지.

―‘미투’ 운동을 하지만, 결국엔 ‘미투’가 필요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랑 비슷한 것 같아. 서한나, 권사랑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언제야?

한나 나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1992년 11월 5일, 내 생일인데 그 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차별이 시작됐기 때문이야.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한 건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직후인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씨앗이 있었던 것 같아. 예를 들면 “왜 맨날 살인은, 강간은 여자만 당하지?” “왜 나만 밤길을 조심해야 하지?”라며 불만이 가득한 아이였어. 그렇게 어떤 분노를 축적해오고 있다가 사회적인 사건이 생기면서 ‘아 이런 분노가 페미니즘으로 모아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보슈> 안에서 실행해보자고 결심한 거였지.

사랑 권사랑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2016년 1월이야. 어떤 다큐멘터리를 갈무리한 ‘짤’을 찾은 날이었어. 어떤 이야기였냐면, 똑같이 좋은 학교를 나오고 회사에 입사한 부부가 있었는데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 시작하면서 그 직업을 전부 포기해야 했고 남성은 계속 커리어를 유지하는 내용이었어. “이게 뭐지?” 싶었지. 나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당당하고, 일 잘하고, 자기 역할을 되게 멋지게 수행하는 여성이 되고 싶었는데…내가 만약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내 커리어가 단절되거나 내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억울함이 확 들었달까.

내가 원하는 것, 내 주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좌절되는 걸 보면서 분노와 억울함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

한나 페미니즘은 나한테 신발이야.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집 밖으로 걸어나가게 됐달까. 밖으로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활동도 하고. 맨발이었다면 다쳤을 수 있는데 일종의 보호막이자 무기가 된 거지. 이 신발을 신고 멀리 나가는 것, 그게 지금 내겐 페미니즘이야.

사랑 여성들이 자기 본성과 욕구, 그리고 생긴대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 여성들이 뭔가를 원하는 걸 제한하는 장치들을 같이 없애 나가고 싶어. 그 여성들이랑 함께 즐겁게 살고, 놀고 싶기도 하고ㅎㅎ

지역의 또래 페미니스트들을 찾고 연결하고 모으는 것, <보슈>가 하고 싶고 해왔던 또 다른 일이다. <보슈> 제공

#4. 페미니즘 덕에 내 삶은 더 생동감 있고 행복해.

―요즘 고민하는 화두가 있어?

한나 5살 차이가 나는 언니가 지난해 딸을 낳았는데 그 조카를 형부와 우리 엄마의 고정관념에 물들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가 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ㅎㅎㅎ 엄마가 자꾸 분홍색 옷을 사다주면서 ‘공주님’ 이렇게 부르니까 집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거야. 아직 돌도 안 지났지만 말을 시작하면 그 때부터 얘기해 줄 생각이야ㅎㅎ

사랑 ‘판을 바꾸는 언니들’ 두번째 주인공이었던 홍진아 선샤인콜렉티브 대표가 서울에서 했던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지난해 참여했었어.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도 굉장히 외로운 기획자였거든. 특히 지역에선 <보슈> 친구들 말고는 참고할 만한 여성 선배 기획자나 동료도 없고. 우리끼리는 열심히 하는데 “이게 뭐지?”하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왔고. 그런데 그 곳에 가서 여성 선배 기획자도 만나고, 나와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여성 동료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많은 위안을 얻었어. 이런 경험이 지역에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약 기회가 되면 대전에서도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처럼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어.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산다는 건 결국은 더 예민하게 사는 일 아닌가 싶어. 더 많이 화가 나고 피곤해지는 순간들이 오지 않아?

한나 언제부턴가 글을 쓸 때 ‘이건 왜 이래?’라며 불편하게 만들거나 화를 내게 되더라고. ‘아름답고 좋은 말을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텐데’란 생각을 한 적도 있어ㅎㅎ 반면 일상에서 느끼는 괴로움이나 답답함을 글로 썼을 때 다른 여성들이 굉장히 좋아해주고 또 위로를 받아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 그럴 땐 정말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껴. 이제는 별로 억울하진 않아ㅎㅎㅎ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지면 배로 예민한 일상을 살게 되지만, 사실 그 덕에 정말 내가 생동감 있게 산다는 생각을 하니까 행복해.

사랑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공유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선 내 주변의 여성들을 좀 더 진심으로 아끼게 된 것 같아.

<보슈>를 하면서 그런 여성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아직 이런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도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

―대전의 여성들과 ‘규방글방’이란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들었어. 여성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야?

한나 여성주의 글쓰기는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 그동안 (남성중심적으로 쓰인) ‘원전’을 두고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작업이니까. 여성주의를 만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 가능해졌거든. 그래서 모든 여자들이 글을 쓰면 좋겠어. ‘규방글방’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여성청년들과 우리 집에 모여서 쓰고 합평하고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야. 4월부터 하는데 6명 정원이 꽉 차 새 반을 추가로 개설할 생각이야. ‘규방’은 옛날에 여성들이 생활하던 안채인데 정치와 사회에서 격리돼 있는 공간이었잖아. 일부러 그 용어를 가져왔어. 우리 집에서 정치, 사회, 문학 이야기를 모두 하자는 뜻에서ㅎㅎ

이제 대전에는 페미니즘을 내걸고 여는 행사가 생겼고,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놀고 친목을 다지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겼다. <보슈>가 바꾼 대전의 풍광이다. 권 대표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존재, 특히 여성 청년은 계속 지워져왔다”고 말했다. 대전에도 다른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것, 지역 여성 청년의 존재를 드러내는 건 <보슈>의 목표기도 하다.

<보슈>의 올해 키워드는 ‘비혼’이다. 비혼 여성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연 뒤 연말엔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권 대표는 “‘비혼’이란 의제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싣고 비혼인 삶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볼 수 있도록 돕는 실용서를 내고 싶다”고 했다.

두부두루치기, 튀김소보루, 명란바게트…지역의 명물을 이용해 ‘지역성’을 살리겠단 이들은 “명란바게트처럼 잘 나가고 싶다”고 했다. 촬영=황금비 기자

“두부두루치기처럼 맵고, 튀김소보루처럼 잘 나가고, 명란바게트처럼 질기다.”

여성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냐 물었더니 대전의 특색을 십분 살린 답이 돌아왔다. “질기게 오래 살아남아서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앞으로 더 잘 나가고 싶다”는 당찬 말과 함께.

'판을 바꾸는 언니들' 구독할래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

메일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위와 같이 수집하고 이용하는 데 동의하시면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세요. [구독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입력한 내용이 저장되지 않습니다.

<‘보슈’를 만날 수 있는 곳>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boshu.mag

△페이스북 http://facebook.com/boshu

△트위터 http://twitter.com/boshu_mag

△브런치 http://brunch.co.kr/@boshu

대전/취재=박다해 기자, 연출=황금비 기자 doal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판을 바꾸는 언니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