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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7 18:07 수정 : 2019.04.11 10:46

[낙태죄, 존폐 논쟁을 넘어] (상) 헌법심판 앞둔 여성들의 현실

대부분 불법 규정에 교육과정 없어
자궁내막 등에 손상줄 수 있는
위험한 소파술 비율 여전히 높아

이달 초 헌법재판소가 형법 269조 1항(자기 낙태죄)과 270조 1항(의사 등의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합헌에 이어 두번째 결정을 앞두고, 낙태죄 존폐를 넘어 국가가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로 논의가 확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여성의 건강권 보장 차원에서 유산 유도약 도입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 ㄱ씨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경우가 엄연히 있지만 의과대학에서 교육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ㄱ씨도 수업 때 “한국은 불법이니 몰라도 된다. 자연유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넘어갔을 뿐이다. 의대 본과 3학년인 ㄴ씨는 “지난해 강의안을 모두 찾아봤으나 임신중지에 대해 언급된 건 ‘부인과 영역에서 윤리적 쟁점이 있다’며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두줄 적힌 게 전부”라고 말했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7년 인공임신중절 건수를 약 5만건으로 추정했는데, 실제론 이보다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문제는 법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는데도 의료진이 산부인과 커리큘럼과 임상실습, 수련과정에서 임신중절과 관련된 최신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낙태죄 조항 탓에 ‘불법’이란 낙인을 벗어나기 어려워 임신중절수술법을 배우는 것 자체가 금기로 여겨진다.

이런 낙인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등 합법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이 필요한 환자조차 최선의 진료를 받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여성위원장은 “불법이란 점이 두려워 새로운 임신중절 수술법을 익히는 의사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여성은 (임신중절 과정에서) 합병증이나 예후에 대한 상담을 받지 못하고 수술 이후 추적관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더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지만, 소파술 비율이 높은 것이 그 예다. 임신중절 방법에 대한 가장 최근 조사가 2005년인데 이때 소파술이 47%, 흡입술은 21%, 약물요법은 1%를 차지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최예훈씨는 “대학병원에서는 아직도 소파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소파술은 날카로운 기구인 ‘큐렛’을 사용해 자궁의 내용물을 비우고 자궁내막을 긁어내는 시술이다. 자궁내막에 손상을 줄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소파술보다 안전하고 간단한 흡입술을 권고한다. 흡입술은 부드럽게 휘어지는 흡입관(캐뉼라)을 진공펌프와 연결해 자궁 내용물을 흡입하는 방법이다.

터부시되는 분위기 안에서 임신중절 관련 지식은 알음알음 전달된다. 산부인과 의사 ㄷ씨는 “흡입술과 미소프로스톨(자궁수축 촉진제) 약물을 사용하는 등 (소파술이 아닌) 방법은 개인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야 접했다”고 했다. 인의협 여성위원회는 세계보건기구(WHO)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자체 워크숍을 열었다. 관심있거나 필요성을 느끼는 의료인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을 위한 인공임신중절 큐앤에이(Q&A)’ 자료집도 만들었다.

보건의료계는 임신중절을 보편적인 건강권을 위한 필수 의료행위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의대·간호대·약학대 등에서도 필수 과정에 넣고, 산부인과 의사들도 재교육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위원장은 “다른 의료서비스처럼 (평등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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