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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9 05:08 수정 : 2019.04.11 10:45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 참석한 시민 사회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마찬 뒤 행진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낙태죄, 존폐 논쟁을 넘어] (중)

헌재, 11일 위헌여부 선고키로
2012년 합헌 결정 뒤 두번째 심판

2010년 “낙태 반대” 53%였던 여론
2017년엔 “낙태죄 폐지해야” 52%
사회인식·재판관 바뀌어 결과 주목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 참석한 시민 사회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마찬 뒤 행진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낙태죄가 두번째로 헌법의 심판대에 선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11일 임부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의사 등의 임신중절수술을 금지한 270조 1항(의사 등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고 8일 밝혔다. 2012년 당시 4(합헌) 대 4(위헌)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뒤 7년 동안 낙태죄 처벌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뜨거워진 여성주의 물결 속에서 낙태죄는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통제하는 상징적인 법조항이 됐다. 여성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집회에서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등을 외쳐왔다. 2012년 헌재는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해당)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이라고 봤다.

사회적 흐름도 7년 전과 상당히 달라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017년 낙태죄 폐지 찬반에 대해 물은 결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51.9%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36.2%)보다 높았다. 2010년 리얼미터가 ‘낙태 허용 여부’를 물은 결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3.1%였던 것과는 상반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조사에선 만 15∼44살 여성 10명 가운데 7.5명이 낙태죄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양쪽 모두 합헌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 대신 위헌성을 인정하되 국회가 일정 시한까지 법을 고칠 것을 요구하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단순 위헌’이나 ‘한정 위헌’ 등도 가능하다.

헌재 분위기도 바뀌었다. 헌재는 2012년 결정문에서 모자보건법을 거론하며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아니한 것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유남석 헌재소장은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신 초기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을 허용하도록 입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사회·경제적 사유로 꼽히는 사항은 자녀 수, 임부의 나이, 경제적 상황, 양육 조건, 부모의 질병 등으로, 주로 임신한 미성년자나 비혼모의 임신중절을 허용하기 위해 거론돼왔다.

헌재 결정이 다가오면서 낙태죄 폐지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논의 지형도 진화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나 100일 넘게 이어진 헌법재판소 앞 1인시위에서 “(국가의) 처벌도 허락도 거절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으로 양분된 프레임을 넘어서 여성의 몸을 ‘통제 가능한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임신중절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일부의 변화’가 아니라 처벌 조항을 폐지하는 ‘완전한 비범죄화’, 나아가 ‘안전한 임신중지’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했다. 여성계는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시민권 등 사회적 기본권 측면에서 임신중절을 전면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형법의 처벌조항을 전제로 한 모자보건법 개정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나영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2010년부터 임신중절을 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고 요구해왔다. 2016년부터는 ‘형법상 낙태죄 폐지’ 요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모자보건법’도 국가에 의한 인구통제 역사를 담고 있는 법으로 인식해 내용과 틀 자체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로 변화했다”고 되짚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역시 지난해 3월 △모든 임신중절의 비범죄화 △처벌조항 삭제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게 양질의 의료접근권 제공 등을 한국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헌재가 낙태죄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더라도, 임신중절 허용 범위를 일부 넓히는 방식으로 논의가 좁혀지면 또 다른 ‘낙인찍기’가 벌어질 수 있다고 여성계는 우려한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자격’을 여성이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이를 심사,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권도 ‘선택적으로 주장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법은 폭행으로 인해 유산이 발생한 경우 살인죄, 영아살해죄로 보지 않는다. 난임시술을 위해 체외수정으로 만들어진 배아 역시 생명권을 인정받지 않는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임신중지가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다른 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세계적인 의학학술지 <랜싯> 등에 따르면 캐나다는 인공임신중절에 사유와 기간의 제한이 없지만 중절률은 가임여성 1000명당 14건으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임신중지를 적극 제한하는 중남미의 중절률은 1000명당 44건에 이른다.

낙태죄 폐지는 세계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다. 임신중절을 금지한 대표적인 국가였던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낙태죄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8조를 국민투표에 부쳐 35년 만에 폐지했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게 최장 14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도 국가보험 적용을 받아 대부분 무료다.

임신중지 유도 약물 도입국도 늘고 있다. 이미 세계 67개 나라에서 허용했는데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슬로바키아, 일본, 폴란드, 칠레, 한국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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