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8 12:12
수정 : 2019.04.2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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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오른쪽)와 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인 샤하브 아마디안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대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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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검사-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 샤하브 아마디안 대담
주한 북유럽 대사관 공동주최한 토크쇼 함께 참석
“가부장제 안의 ‘남성성’이 남성을 억압해”
“페미니즘 통해 성평등 사회 이루면 남성에게도 좋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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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오른쪽)와 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인 샤하브 아마디안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대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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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를 향해 연신 “용감하다”고 했다. 한 명은 자신의 삶을 건 성폭력 고발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한 명은 페미니즘에 낯선 남성을 설득해 가는 도전에 대해 얘기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잇따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25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서지현 검사와 스웨덴의 남성 페미니스트 샤하브 아마디안 얘기다. 둘은 이날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주한 북유럽 대사관이 공동주최한 토크쇼 ‘노르드톡스’(NORD Talks)의 연사로 함께 참석했다.
아마디안은 비영리 페미니즘 단체 ‘맨’(MÄN)의 프로젝트 매니저다. 1993년 탄생한 이 남성단체는 같은 남성들에게 손을 내민다. 남성성이 가진 유해한 점을 바꾸려 노력하고 페미니즘을 알리며 성별에 기반해 발생하는 ‘젠더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활동한다. 상근자는 30명, 회원은 1500명에 이른다. 팟캐스트,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남성들에게 긍정적인 롤모델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저소득층이나 사회 취약계층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접근법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유해한 남성성’이 무엇인지,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성평등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90여분간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눴다. 처음 만났으나 동질감을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서 검사는 “한국과도 정말 비슷하네요”라고 했고, 아마디안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부장제는 전 세계적인 거니까요”라고 응수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밝힌 연구결과를 보면 20대 남성 10명 중 6명이 “남성은 힘든 일을 내색하면 안 된다”거나 “남성은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인 남성성’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 남성들에겐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이 둘의 대화에서 그 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서지현(이하 서) 활동하는 단체의 주요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마디안(이하 아) ‘남성성’을 재정의하고, 남성을 ‘맨박스’(남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고정관념)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서 ‘남성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 사실 ‘완벽한 남자’가 되는 지침 같은 건 없다. 가부장 사회에선 임금이나 고용기회처럼 남성들이 얻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솔직하게 표현할 기회가 적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게 ‘유해한 남성성’이다. 이전에 기자생활을 하며 감옥의 재소자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남성성과 ‘맨박스’는 남성에게 억압을 가하는데, 이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남성문화를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아마디안은 “페미니즘은 남성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부모님이 모두 이란 출신인 그는 인종과 계급,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 페미니즘이 존재한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기존의 권력구조를 해체함으로써 평등을 추구하고 인권을 보장해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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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왼쪽)와 샤하브 아마디안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성평등 사회에 대한 대담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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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최근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진다. 스웨덴에선 이런 ‘백래시’(반발)가 없었나.
아 사회구조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지 고용, 승진, 임금 격차 등 수치와 통계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나. 페미니즘은 무언가를 억압하는 개념이 아니다.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진다는 건데, (기존 구조가 남성에게 유리하다 보니) 물론 현재 남성이 가지고 있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발전과정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알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변화는 분명 남성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유해한 남성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스웨덴에도 ‘안티 페미니즘’은 있다. 그는 지난해 제2야당으로 부상한 ‘스웨덴민주당’의 예를 들었다. 우파 정당인 이 당은 인종차별주의나 파시스트 성향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마디안은 하지만 “백래시 현상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반발의 존재 자체가 “페미니즘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 현상 앞에서 남성들이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남성을 설득하는 것이 같은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남성이 나서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나.
아 그렇다. 내 동료들만 봐도, 여성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 잘 안 듣는다. 반면 내가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여성들이 지난 150여년간 (여성운동을 통해) 그들만의 활동을 해왔다면, 남성들은 이제야 ‘유해한 남성성’을 자각하고 변화의 첫발을 뗀 셈이다.
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한국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 ‘강하고 용기 있다’는 말의 의미를 비틀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와 다른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용기’이고 ‘강함’이다. “마음을 열고 용감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서 한국에도 ‘용기 있는 남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웃음)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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