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2 20:24
수정 : 2019.05.0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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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성폭력 범죄통계 개선 세미나’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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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 범죄통계 개선 세미나’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젠더폭력 통계 개선해야”
피해자 과소 추정되거나 누락되는 경우 있어
스토킹,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 신종 범죄도 포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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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성폭력 범죄통계 개선 세미나’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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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은 배우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 16일 발표한 ‘2018년 가정폭력행위자 상담통계’를 보면 남편에 의한 아내 폭력 비율이 59.6%로 가정폭력 중 가장 많았다. 하지만 가정폭력 통계를 작성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배우자’로 표기하는 항목은 없다. 현재 경찰청 범죄통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국가, 공무원, 고용자, 피고용자, 직장 동료, 친구, 애인, 동거친족, 기타친족, 거래상대방, 이웃, 지인, 타인, 기타, 미상으로만 분류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폭력 범죄통계 개선 세미나’ 토론회에서 “배우자의 지속적인 폭행에 의한 살인사건의 경우 ‘배우자’라는 항목 부재로 인해 통계 원표 작성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회는 성별(gender)에 기반해 발생하는 폭력(젠더폭력)에 대한 통계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와 같은 젠더폭력에 대한 국가 종합 통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오는 12월 시행을 앞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이 같은 젠더폭력 발생 현황 등에 관한 통계를 정기적으로 수집하고 공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젠더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정확하게 기재하는 건, 비단 통계의 정확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해당 관계에 따라 이후 지원방식, 상담내용, 수사·사법지원 형태가 달라져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한국과 유사한 형사사법체계를 따르는 일본은 배우자 중에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를 따로 표시해 배우자의 폭력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전 배우자, 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 등 보다 세부적으로 명시하고 있고, 캐나다 역시 배우자를 별도로 분류한다.
이 교수는 “국내에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처분을 받은 최종 선고내용에 대해서는 ‘사법연감’에서 배우자 관계를 보고하고 있으나 (특례법이 아닌 형법을 통해) 형사 사건화 된 가정폭력사건은 (통계에) 포함돼있지 않다”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많은 범죄가 배우자, 연인 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므로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서 배우자 항목은 필수적으로 입력돼야 하는 항목”이라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사건들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 점도 개선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 교수는 “국내 형사사법 절차는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 살인’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으로 여성이 사망해도 ‘살인’통계로 잡히지 않아 그 규모가 과소추정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엔의 ‘국제표준 범죄통계분류체계’(ICCS)를 예시로 들며 “(유엔처럼) 인명피해 관련 범죄행위를 ‘살인 및 치사’로 함께 분류해야 범죄통계 누락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현행 젠더폭력 통계의 또 다른 한계점은 데이트폭력,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를 과소집계할 가능성도 있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성폭력 범죄 수집체계는 한 사건에 피해자가 여러 명이어도 대표 피해자 한 명에 대해서만 입력할 수 있게 돼 있다. 대표 피해자 선정 기준에 대한 가이드 라인도 없다”고 꼬집었다. 또 성매매 관련 통계에 대해서도 윤 연구위원은 “성구매자, 성판매자 통계뿐만 아니라 성매매 알선자나 성매매 강요 등 성매매처벌법이 명시한 항목별로 범죄유형을 세부적으로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 밖에도 범행의 지속성이나 반복성을 나타내는 항목을 추가하고, 경찰·검찰·법원 간 범죄통계를 연동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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