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7 20:46
수정 : 2019.07.0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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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무개(36)씨가 전남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베트남 출신 부인 ㄱ씨를 폭행하고 있는 영상의 한 장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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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구타 영상에 공분 일어 남편 긴급체포에 영장 신청
인권위 2017년 조사, 이주여성 열명 중 넷 가정폭력 피해
가부장적 인식 여전한데다 ‘국적취득 과정서 신원보증’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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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무개(36)씨가 전남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베트남 출신 부인 ㄱ씨를 폭행하고 있는 영상의 한 장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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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져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가부장적 인식뿐 아니라 국적 취득 과정에서 여전히 남편의 ‘신원보증’을 요구하는 현실이 결혼이주 여성들의 인권 침해를 조장,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 영암경찰서는 지난 6일 특수상해와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김아무개(36)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지난 4일 밤 9시부터 3시간 동안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베트남 출신 아내 ㄱ(30)씨를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마구 때려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 4주 이상 치료해야 하는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두살배기 아들을 안고 있는 ㄱ씨를 때려 아동 학대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은 ㄱ씨와 아들을 쉼터로 옮겨 가해자와 분리했다.
ㄱ씨는 평소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거실 탁자 위 기저귀 가방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영상을 촬영했다. ㄱ씨는 지난 5일 남편의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지인에게 보냈고, 이를 전달받은 지인들이 경찰에 신고한 뒤 에스엔에스에 영상을 올렸다. 경찰은 6일 오후 5시께 영상을 확인하고 3시간 뒤 남편을 불러 조사한 뒤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7일 “사안이 중대하고 보복이 우려된다”며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ㄱ씨와 같은 결혼이주 여성의 가정폭력 피해는 일반적이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결혼이주 여성 체류실태’ 자료를 보면, 결혼이주 여성 920명 가운데 42.1%에 이르는 387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정폭력 피해 유형(복수응답)을 보면, 피해자 가운데 81.1%(314명)가 가정에서 심한 욕설을 듣는 등의 심리·언어적 학대에 시달렸고, 67.9%(263명)는 성행위를 강요받거나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 ‘흉기로 위협당했다’는 응답도 19.9%(77명)나 됐다.
2007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캄보디아 출신 쏙카(가명)도 결혼 3년 차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결혼 초 “밭에서 같이 일하려고 내가 돈 주고 너를 데려왔다”며 욕설을 퍼붓더니 머리카락을 붙잡고 벽에 밀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폭력을 일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울면서 말리면 남편은 티브이(TV)를 크게 틀어놓고 쏙카를 때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만 돌아왔다. 쏙카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갈 때쯤 남편을 설득해 국적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후 쏙카가 쉼터로 몸을 피하자 국적 신청을 취소해버렸다.
전문가들은 결혼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으로 우선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꼽았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부부간 권력이 평등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더해 국제결혼 커플의 경우 평균 10살 이상 나이 차이에 따른 위계가 발생하다 보니, 한국인 남편이 외국에서 온 나이 어린 부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우리 집에 들여놨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결혼이주 여성이 국적을 취득할 때 한국인 배우자가 전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 법 조항 등으로 인해 이주 여성들이 배우자에게 종속되고, 이런 종속 관계가 가정폭력 피해를 더욱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권위는 2011년 결혼이주 여성이 국내에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을 때 한국인 배우자가 ‘위장결혼 방지’ 취지로 신원보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명시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표명했다. 이후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은 폐지됐지만, 결혼이주 여성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 등을 할 때 혼인 관계 사실 등에 대한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은 여전히 필요하다. 한국인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신원보증을 철회하면 이주여성은 체류가 어려워진다. 고명숙 대구이주여성쉼터 소장은 “결혼이주 여성인 부인이 국적을 획득하면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국적 취득을 도와주지 않는 일이 적지 않다”며 “최소한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 연령이 되면 혼인의 진정성을 인정해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영암/안관옥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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