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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5 19:07 수정 : 2019.09.05 19:56

국가인권위 진정 이후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은 대전MBC 김지원(왼쪽부터) 유지은 아나운서.

[짬] 대전MBC 유지은·김지원 아나운서

국가인권위 진정 이후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은 대전MBC 김지원(왼쪽부터) 유지은 아나운서.

“차라리 해고를 당하는게 나을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채용 성차별’ 진정을 넣은 이후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은 <대전엠비시(MBC)> 유지은(33), 김지원(31) 두 여성 아나운서의 말이다. 2014년, 2017년 각각 입사한 두 아나운서는 지난 6월 인권위에 “대전엠비시가 여성임을 이유로 고용 형태나 고용 조건에 있어 차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대전엠비시 아나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정확히 성별로 나눠진다. 여성 아나운서 3명은 모두 프리랜서, 남성 아나운서 3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입사 당시 회사는 어떠한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두 아나운서의 월급은 새로 입사한 남성 후배 아나운서보다도 적었다. 후배는 정규직이었다. (▶관련 기사 : [단독] “여 아나운서는 질려서”…지역MBC ‘채용 성차별’ 논란)

지난달 31일 서울 자양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아나운서의 손엔 대학 강의 교재만큼 두꺼운 제본이 들려있었다. 입사 이후 어떻게 근무를 해왔는지 빼곡히 적힌 일종의 근무 일지였다. 두 사람은 진정 한 달 뒤인 7월 갑작스레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폐지와 하차를 통보받았다. 방송국은 8월 5일 ‘프리랜서 뉴스 진행자’ 공고를 내고 23일, 26일 각각 유씨, 김씨에게 티브이 프로그램 추가 하차 통보를 했다.

“5월에 새롭게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두 달이 채 안 돼 하차 통보를 받았고, 티브이 프로그램 두 개도 동시에 하차하란 지시를 받았어요.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서 개편한다’고 하지만 (다른 것은) 변하는 게 없고 (결과적으로) 저만 하차해요. 특정 아나운서만 ‘핀셋’처럼 노린 개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김)

이들은 계약형태만 ‘프리랜서’일 뿐, 서울 지상파 방송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프리선언’을 하는 유명 아나운서들과는 근무 환경이 완전히 달랐다. “말그대로 ‘프리랜서’라면 여러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였어요. 사무실 책상이 있었고, 주 5회 출근했으며, 상시적인 업무지시를 받았지만 급여만 주급으로 주는 형태였어요.” (유)

“주말 당직근무도 돌아가면서 했고 녹화시간이 바뀌었을 때도 일방적인 통보나 지시를 받으며 일을 했어요. 다른 일을 할 수 없도록 장시간, 징검다리 근무를 해온거죠. 그런데 하차 통보 이후 ‘해고’냐고 물어보니까 오히려 ‘직원도 아닌데 무슨 해고냐’는 말이 돌아오더라고요.”(김)

“남성은 정규, 여성은 비정규로 뽑아”
지난 6월 인권위에 고용 차별 진정
한달 뒤 잇단 프로그램 하차 통보
2일부터 회사 앞서 1인 항의 시위
“특정 아나운서 노린 보복성 개편”

회사 쪽 “본사 개편 시기 맞췄을 뿐”

“해고면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이라도 할 수 있는데 업무 축소만으론 불가능하다고 한다. (회사는) 저희가 지쳐서 제발로 나가길 바라는 것”이라고 두 아나운서는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난 2일부터 회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인권위 진정 이후 발생한 프로그램 하차 통보가 “부당한 업무 축소”이자 “보복성 개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 쪽 행태가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임을 강조했다. 여성 아나운서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안에서 여성 아나운서는 업무인 ‘아나운싱’이 아닌 외모와 몸매로 평가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씨는 “‘여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채용 기회 자체가 극히 적고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만 뽑는 불합리한 고용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권위에 “여성 아나운서를 용역직으로 채용하는 이유는 연령을 이유로 적시에 퇴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진정했다. 고용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니 여성은 상대적으로 이직이 잦을 수 밖에 없다. “회사는 이런 현실을 역으로 이용해 ‘여성은 어차피 이직하니까 정규직으로 뽑기 어렵다’고 말한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5일 오전 이들은 피켓을 들고 또다시 회사 앞에 섰다. 오는 9일 개편안이 시행되면 유씨는 라디오 프로그램 단 한 개만 진행한다. 김씨에겐 ‘게스트’로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만 남는다. 맡은 프로그램 횟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다보니 당장 다음달이면 유씨는 100만원대 월급을 받고, 김씨는 이마저도 받지 못하게 된다. 대전엠비시 쪽은 <한겨레>에 “두 분이 어떤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성별을 염두에 두고 채용하는 건 아니다. 본사 개편시기에 맞춰 정체된 시청률 때문에 하는 개편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사진 유지은 김지원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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