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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8 17:59 수정 : 2019.09.11 18:34

[판을 바꾸는 언니들⑩] 여성소설가모임 ‘왓에버’ 차현지·천희란·조우리

‘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왼쪽부터) 차현지, 천희란, 조우리 소설가는 ‘왓에버’팀을 꾸려 여성 소설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촬영 황금비 기자

2016년 문단에선 ‘미투’ 이전의 ‘미투’가 있었다. 트위터 등에서 터져나온 ‘#문단_내_성폭력’ 고발이다. 문학의 이름으로, 작가의 권위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이 반복돼왔다는 사실이 다양한 경험담을 통해 세상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문단 안의 공고한 위계 구조가 만들어 낸 폭력, 그 폭력을 묵인했던 카르텔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제의식이 뚜렷해졌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차현지(32)·천희란(35)·조우리(32) 작가를 중심으로 꾸려진 여성 소설가 모임 ‘왓에버’팀 역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왓에버’팀을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13명의 평론가가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한국문학을 비평한 책 <문학은 위험하다>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 뭉쳤다고 했다. 지난달 ‘한여름의 위험한 북토크’ 행사를 네 차례 걸쳐 열고, 해당 책의 저자와 독자가 함께 ‘한국문학과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왓에버’팀은 7일 대전에서도 같은 주제로 북토크 행사를 열었다.

#1. “갈급함을 느끼는 동료들이 많더라고”

―안녕! 세 사람은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궁금해. ‘왓에버’는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팀인지도.

우리 사실 느슨한 공동체에 가까워. 각자 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만나고 보니 연결점이 있어서 ‘왓에버’라는 팀을 꾸리게 된 거야. 사실 영어이름은 ‘왓에버’라고 붙였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라고’였어ㅎㅎ 가장 큰 활동은 여성 작가들을 지원하는 일인데, 최근에는 여성 평론가 13명이 쓴 평론집 <문학은 위험하다>라는 책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북토크’ 자리도 만들고, 평론집 그 자체를 창작자들이 릴레이 형식으로 리뷰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현지 “우리가 판을 깔았다. 그래서 어쩌라고?”팀 이름이 뭐 이런 의미도 있는 것 같아ㅎㅎ 사실 이쯤되면 문단에서도 “(새로운) 판을 직접 깔아버리는” 시도가 한 번쯤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 기존에 있는 판에선 그런 시도가 없을 때가 많으니까 “직접 해버리자. 그럼 뭐 어때” 싶었던 거지. 좀 답답했거든.

차 작가는 지난 6월 다양한 원고와 리뷰를 싣는 ‘문학 큐레이션 플랫폼’인 ‘에스알에스’(s-r-s.kr)를 만들었다. 원하는 작가들로부터 원고를 청탁받아 게재하며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대필 사건’을 고백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2016년 미디어 아티스트 흑표범의 세월호 전시 도록에 실린 김경주 시인의 글을 대필했다는 걸 밝혔다. ‘위계’에 의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현지 (대필 이후) 혼자 끙끙 앓았어. 또 다른 후배들이 (나처럼) 이런 착취나 위계에 의한 폭력을 당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착취나 폭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결국 좋은 작가와 작품을 (기존 문단의 권력에 기대지 않고) 알릴 수 있는 새로운 구멍을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문학 지면이라는게 너무 적고 소설가들은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런 갈급함을 느끼는 동료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사명감을 느끼게 되기도 해.

천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비평집 <문학은 위험하다>를 읽고 재비평하는 글을 연재한다. ‘위험한 리뷰’란 프로젝트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한국 문학을 비평한 책을 창작자 입장에서 다시 비평함으로써 '한국문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시작했다. 현재까지 5명의 필진이 리뷰를 게재했다.

차현지 작가가 개설한 문학 큐레이션 플랫폼 ‘에스알에스’(s-r-s)
―<문학은 위험하다>는 어떤 책이야?

희란 <문학은 위험하다>는 2017년부터 나왔던 다양한 현장 비평과 짧은 논문들을 ‘페미니즘과 독자시대’라는 큰 주제 안에서 추려 모은 책이야. ‘페미니즘’이란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그치는 게 아니라 문학 전반을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나 관점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책을 기반으로 더 확장된 논의를 하고 싶어 시작했어. (책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충돌하거나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논의 지형이) 새롭게 넓어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거든.

모두 ‘등단’과 ‘비평’이라는, 공고한 권력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시도다. 등단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도 소수의 문예지처럼 제한된 지면만 허용되다 보니 작품 게재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을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가 형성됐다. ‘선택받기 위해’ 폭력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평을 비평하는 이들이 없었기에 ‘비평’ 역시 또다른 권력으로 굳어졌다. 가르치거나, 심사하거나, 평가하는 자리엔 늘 남성들이 있었다. “남성중심적인 등단 시스템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하면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날 때, 문단 그 자체도 건강해질 수 있겠다”는 것이 3명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가졌던 문제의식이다.

희란 오래 전부터 소설은 ‘여성적인 장르’라고 말을 해오면서도 이상하게 문학사는 늘 남성 중심이었어. 많은 여성 작가들이 오랜 시간동안 좋은 작품을 많이 써왔지만, 정작 문학이나 비평의 장이 여성을 호명하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돼 있었거든. 소수의 여성을 마치 (모든) 여성의 대표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남성 작가들이 쓴 작품을 두고 ‘남성 작가’가 썼다며 의미를 부여하진 않잖아. 그러니까 ‘여성 작가의 약진’이 마치 특별한 무언가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쓰여진 문학사에 대해서 재검토해야 하는 시기라고도 생각해.

‘왓에버’팀이 꾸린 북토크 행사. 서울과 대전에서 각각 열렸다. 왓에버 제공

#2. “여자 냄새나는 소설은 쓰지 말라고 배웠어”

문단 안팎에서 여성혐오는 일상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여성혐오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현지 여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는데 교수님들은 다 남성이었어. 1학년 1학기 소설 창작 시간 때 들은 지침이 뭐냐면 ‘여성 이야기를 쓰지 마라’ ‘생리 이야기를 쓰지 마라’ ‘성폭력 당한 이야기 쓰지 마라’ 이런 거였지. 그 교수님은 항상 “소설에는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보편적인 진실을 찾아 헤메는 여정이 바로 소설의 탐구다”라고 했는데 결국 그가 말한 “보편적인 인간” 안에 여성의 존재는 없는 거잖아. 습작을 쓰면 여성 캐릭터라는 이유만으로 혼도 많이 났었고.

우리 (남성 작가들은) 자궁도 없는데 생리에 대해 쓰고 그러면서ㅎㅎ ‘여자 냄새나는 소설을 쓰지 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 그런데 남성들은 자신의 첫사랑이나 홀어머니의 이야기들을 마치 굉장히 인간 보편의 이야기인 양 쓰잖아. 그런 분위기가 답답했지.

희란 남성이 여성에 대해 쓰면 그거는 ‘보편’의 범주에 속하고, 여성이 여성에 대해서 쓰면 ‘특수한 것’처럼 이야기가 되는 거지ㅎㅎ 여성의 이야기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로만 치부돼왔던 거야. ‘#문단_내_성폭력’고발이나 ‘미투’ 이후에야 여성의 이야기가 사담이 아니라 공적인 장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변화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아.

현지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니까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내면화가 되는 거야. ‘이걸 이렇게 써도 되나?’ 싶고. 여성의 이야기를 쓰면 ‘내가 그냥 조잘거리는 것 아냐?’ 그런 생각도 들고. 이걸 헤쳐나오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아마 다들 그랬을 거야.

4회에 걸쳐 진행된 ‘북토크’ 행사는 각 회차마다 모든 관객석이 매진될 정도로 높은 호응을 받았다. 왓에버 제공

2016년 이후 여성 작가들이 새로운 문법과 언어를 고민하는 이유다. “(문단 안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방조하면서 가해자였던 동시에 피해자인 시절이 있었다”고 차 작가는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나와 어떻게 하면 잘 화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소설을 쓰면서도 누군가를 쉽게 대상화하는 장면은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관행처럼 쓰였던 표현들을 “(최대한) 안 할 수 있으면 안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희란 나는 오히려 새로운 표현을 찾아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 마치 (여성 직업인에게) 으레 붙는 수식어인 ‘여○○’를 떼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ㅎㅎ (소설 안에서) 어떤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 어려워도 이런 고민을 계속 지고 가는 게 작가로서의 노력인 것 같고. 이런 싸움을 하는 과정을 소모적이거나 서로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갈등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사회든 인간이든 성숙해나가는 거니까 그 자체를 나쁘게 보기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싸워나갈 것인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도 생각해.

다른 두 작가의 맞장구가 이어졌다.

우리 ‘내가 어떻게 페미니즘 작품을 써’라는 작가분들도 계셔. 하지만 이전에 부끄러운 작품을 썼다면 그걸 반성하고 더 배워서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가는 것 아닐까? 그게 결국엔 페미니스트 작가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도 생각하고. 사람의 위치나 입장, 생각이라는 게 고정되거나 단정적이진 않고 계속 변하는 거잖아.

현지 페미니즘은 어떤 소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가져가야 하는 관점이자 방향성이지. 그 렌즈를 끼지 않는 건 지금 시대를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것 같아.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이후 문단 안에서 변화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사실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나 서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문단이 촉발하거나 이끌어가는 부분도 있잖아. ‘82년생 김지영’이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고, 젊은 여성 작가들이 계속 주목받거나 호명되기도 하고. 실제로 문단 안에선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런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해.

희란 여러 변화가 있지만 사실 구조 자체가 변했다고 보기엔 아직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아. 흔히 있던 술자리들이 좀 사라지거나 한 면은 있지만, 사실 시스템이 쉽게 바뀌진 않잖아. 대신 작가 한 명, 한 명의 자각이 좀 달라졌지. 특히 여성작가들의 경우엔 (글을 쓰는) ‘몸’ 자체가 바뀐 것 같은 느낌? 작품을 읽고 쓰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고 하는 작가들도 굉장히 많은 것 같고. 걱정되거나 아쉬운 지점은 있어. ‘페미니즘’이 어떤 특집으로만 다뤄지다가 이 불이 꺼지는 거야. 사실 내가 제일 화가나는 건 마치 이런 변화의 흐름 자체가 아예 없는 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더 많은 독자들이 계속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이번에 비평집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 비평이 작품보다 (독자로부터) 더 소외돼 있는 부분이라서 소개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

‘왓에버’팀. (왼쪽부터) 차현지, 조우리, 천희란 작가. 왓에버 제공

#3. ‘된장녀’ 파문이 터진 때, 페미니스트가 됐지

―각자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언제야?

현지 나는 2006년 ‘된장녀’파문이야. 한창 ‘칙릿’소설이 유행했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 열풍이 불던 시기에 20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 남자인 친구들이 뭐만 하면 ‘된장녀’ 타령을 하는 거야. 그 때 너무 화가 나서 A4용지로 26장에 이르는 소논문까지 써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한테 보내줬어ㅎㅎㅎ 여성의 취향을 소비적으로만 바라보면서 그를 비하하는 말이 왜 나와야 하는지도 화가 났고, 또 동시에 반대로 “여성은 (소비적이면) 왜 안 돼?”라는 생각도 들었고. ‘된장녀 타령’을 하던 그 친구한텐 “너가 좋아하는 힙합에선 남성들이 권력이나 명예를 얻었다고 가장 먼저 여성을 ‘트로피’처럼 달고 다니지 않냐. 우리가 ‘된장녀’를 할테니 너는 ‘트로피남’을 해라” 말하기도 했어ㅎㅎ 그 때 너무 화가 나가지고ㅎㅎ 다행히 지금의 그 친구는 그 때의 자신을 반성하고 있더라고ㅎㅎ

희란 나의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2016년 9월 25일, 내 생일이야. ‘#문단_내_성폭력’ 고발이 터지기 직전에 <가장 잔혹한 말>이라는 칼럼을 통해 습작하던 시기에 겪었던 성폭력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거든. 25일 그 글을 마감한 생일날, 너무 지친 상태였던 것이 기억나. 다음날 그 글이 공개되고 나서도 파장이 꽤 컸거든. 내 글이 다른 피해자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썼지만 막상 여기저기서 이런 주제로 글을 한 편씩 써달라고 하니까 어느 순간엔 그게 야속하게 느껴지더라고. 과거의 일을 다시 꺼내서 쓰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 얘기를 더 하라고?’싶은 마음도 있었어. 이후 성폭력 피해자 분들과 연대하면서도 연대자들끼리, 또는 피해자와 연대자 사이에서 이런저런 갈등을 겪기도 했고.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고 돌아보니 이날의 경험이 지금 내가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어준 것 같아. 같은 지향점이 있다면 의견이 조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법도 알게 됐고.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건 훨씬 이전이긴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나 혼자 벅차게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고 나눠서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진 것 같아. 지금 ‘왓에버’친구들을 만나 일을 하는 것처럼ㅎㅎ

우리 나는 2011년 가을이야.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거든. 근데 어느날 학교에서 만난 남자 선배가 “뭐하고 다니냐. 졸업반인데 왜 얼굴을 보기 힘드냐” 묻더라고. 그래서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 하고 있다”고 답했더니 “야, 니가 페미니스트야?”이러는 거야. 마치 “니까짓게 페미니스트야?” 이런 느낌이라 “네 저 페미니스트인데요”라고 답했지. 사실 나도 이전까진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그려지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었거든.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나이 많은 언니들?ㅎㅎ 그런데 그날 계기로 페미니스트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나는 그냥 나라는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소수가 독점하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경계를 흔들거나 확장하거나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활동은 “문단을, 문학을 사랑해서 그 판이 더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전선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여성 작가와 비평가, 문학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동시에 “여성 작가들도 혼자 고민하지 않고 자신을 더 드러내면 좋겠다”고도 했다. “같은 방향성을 갖고 싸움을 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왓에버’팀처럼 말이다.

“차를 같이 마시려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다가 이름을 급조했다”는 ‘왓에버’팀은 “언제 해체될 지 모른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당분간은 계속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깔깔 웃었다. 앞으로도 북토크를 이어나가며 독자들을 만나고, 여성평론가들이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할 예정이다. “연말에는 엄청난 특집이 기다리고 있”단다. 힌트를 달랬더니 “일종의 패자부활전 같은 기획을 할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문단에 왜 계속 있느냐는 이야기도 들어. 나는 ‘문단’이라는 하나의 장 자체가 아니라 그 곳에서 파생되는 권력을 잘못 쓰고 있는 사람들한테 불만이 있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장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떤 ‘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판의 권력을 뒤집어 새로운 판을 만들어 보고 싶어.”(조우리)

2016년 문단에서 시작된 변화의 파동 속으로 ‘새로운 판’을 꿈꾸는 이들이 또 다른 돌을 하나 던졌다. ‘왓에버’팀이 만들어내는 파동이 어디까지 확산할 지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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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박다해 기자, 연출=황금비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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