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0 09:28
수정 : 2019.09.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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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관련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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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구성요건 ‘동의 여부’로 전환
“피해자 진술, 성범죄 판단 구축 계기”
국제사회도 지난해 정부에 도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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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관련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희정은 유죄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하늘을 향해 던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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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의 유죄가 확정되면서 성폭력 범죄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날 대법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죄 등으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폭행 또는 협박’을 전제로 강간죄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이 성폭력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법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데서 제기된 개념이다. 이미 국회에 9건이 발의된 관련 형법 개정안은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하여’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나 “명백한 거부의사 표시에 반하여”로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는 특히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의 1심을 계기로 도입 논의가 확산됐다. 당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조병구)가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를 분리한 뒤, 위력 행사 여부에 대해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심한 폭행과 협박이 수반된 가운데 피해자가 적극 저항했어야만 성폭력 범죄가 성립한다는 ‘최협의설’에 기반한 해석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런 관행은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에 견줘 고소율과 기소율을 현격히 낮춰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전국 170개 성폭력상담소에서 24만1343건의 성폭력 상담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대검찰청에 접수된 성폭력 범죄 고소 건수는 4만432건, 이 중 기소된 사건은 1만4404건(35.6%)에 불과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형법상 성폭력범죄의 판단기준 및 개선방안’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긍정적으로 봤다. 보고서는 “폭행·협박 이외의 행위 수단에 대한 기준이 제한되거나 엄격해짐으로써 준강간, 위계·위력간음 등에서도 처벌 공백이 존재한다”며 “비동의 요건이 도입되면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세밀하게 검토함으로써 판단 요소를 분명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폭행·협박으로 해석하면 처벌받지 않는 성폭력 범죄가 생긴다는 것이다.
독일과 영국 등은 이미 ‘동의’를 성폭력 판단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2017년 일반권고 규정에서 “성범죄는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기준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지난해 한국 정부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판단하라”고 권고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폭력 판단 기준이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확인해줬다”며 “이제 국회가 응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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