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4 04:59
수정 : 2019.09.24 10:50
|
<젠더 폭력 관련 법체계 개선방안> 여성가족부 연구용역 보고서
|
[강간죄 패러다임을 바꾸자]
여가부 ‘젠더 폭력 관련 법체계 개선방안’ 보고서
전문가 10명 중 7명 “형법상 강간죄 개정 필요” 공감
“준강간도 비동의 요건으로 바꿔야” 답변도 과반 넘어
|
<젠더 폭력 관련 법체계 개선방안> 여성가족부 연구용역 보고서
|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경찰·검사·판사 등 관련 전문가들도 과반수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해 지난해 12월 펴낸 <젠더 폭력 관련 법체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경력 10년 이상 경찰·교수·검사·판사·변호사·엔지오(NGO)활동가 48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4.2%(26명)가 “폭행·협박의 요건을 제거하고 비동의 요건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답했다. “폭행·협박의 요건을 유지하되 ‘최협의설’을 대체하는 판단기준이 필요하다”(20.8%·10명)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실태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75%(36명)가 ‘개정’에 동의한 것이다.
‘비동의 요건’ 도입에 동의한 전문가들은 “강간죄, 강제추행죄 등 성폭력범죄의 보호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이기 때문에 성폭력범죄 규정 역시 이에 부합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폭행·협박이 동원되지 않으면서도 의사에 반하는 성적 침해에 대해 (현재) 처벌이 모자라는 지점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동의 없이”라는 문구를 현행 강간죄 규정에 도입할 경우 피고인의 입증 책임이 과도해진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절반 가까이 동의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7.9%(23명)는 “동의 없이”라는 문구로 개정하는 것을 지지하면서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동의 없이’로 규정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봤다. 같은 답을 선택한 또다른 응답자는 “오히려 ‘동의 없음’을 피해자의 행위 중심으로 판단하는 재판부가 우려되므로 피고인 행위를 중심으로 판단하도록 제도적인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보충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응답자의 20.8%(10명)는 “의사에 반하여” 내지 “명백한 의사에 반하여”로 개정해 “피고인의 고의 입증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준강간’죄에 대해서도 ‘동의 없음’을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준강간 관련 판례는 술에 일시적으로 취하거나 잠이 든 경우 등을 ‘심신상실’로 판단하지 않는다. ‘항거불능’이란 요건 역시 강간죄처럼 ‘최협의설’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적극적인 저항 여부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응답자들의 54.2%(26명)는 “준강간 역시 ‘비동의 요건’을 기본적인 구성요건으로 바꾼다”는 데 동의했다. 단 ‘의사를 형성하거나 표시할 수 없는 상황’ 내지 ‘장애가 있음을 이용하는 경우’라는 포괄적인 구성요건을 함께 둬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연구를 한 형정원은 “형법 제32장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변경됐고 보호법익이 ‘정조’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이 확립된 해석이지만, 범죄유형과 성폭력 범죄 구성요건 등은 정조를 보호법익으로 할 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사회적 변화에 따른 법해석의 변화가 체계적이고 일관된 형태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