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5 17:13
수정 : 2019.09.25 21:27
|
연세대 캠퍼스 곳곳에 걸린 학교 규탄 플래카드. ‘연세정신과 인권’ 필수수업 지정철회를 규탄하는 졸업생들의 이름으로 제작됐다.
|
연세대 졸업생, 김용학 총장에 서한
“특정 종교집단 일부 목소리가 연세정신 훼손”
“연세의 교육철학 소신있게 지켜달라”
연세대, 2017년 국가인권위와 ‘인권교육’ 협약 체결도
|
연세대 캠퍼스 곳곳에 걸린 학교 규탄 플래카드. ‘연세정신과 인권’ 필수수업 지정철회를 규탄하는 졸업생들의 이름으로 제작됐다.
|
연세대학교가 내년부터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추진했던 인권 수업을 보수·개신교 세력의 항의에 ‘선택과목’으로 바꾸자 연세대 졸업생·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연세대는 애초 일부 항의에도 해당 수업을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으나 지난 19일 학교 누리집을 통해 “교양과목 운영 체계를 논의하는 ‘학사제도운영위원회’를 거쳐 2020학년도부터 ‘연세정신과 인권’을 선택교양 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
▶관련 기사 : 연세대 ‘인권과젠더’ 수업 우파모임 집단항의에…“예정대로 진행”, 연세대, 보수세력 항의에 ‘인권·젠더 강의’ 필수교양 지정 철회)
25일 연세대·대학원 졸업생 동문들은 인권 수업 필수과목 지정 철회를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은 김용학 연세대 총장, 반기문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연세대 학사행정직원에게 각각 우려를 담은 서한을 보내는 운동도 진행 중이다. 13주에 걸쳐 진행하는 ‘연세정신과 인권’ 수업은 인권·사회정의·젠더·아동·장애·노동·환경·난민 등을 주제로 구성된다. 이번 학기 온라인 강의로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2020년부터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젠더’ ‘난민’이 포함된 인권 수업의 필수과목 지정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보수·개신교 세력은 연세대 정문 앞에서 “무분별한 인권교육이 바른 성문화를 무너뜨리고 동성애 옹호를 조장한다”며 반대집회를 이어갔다.
졸업생들은 김용학 총장에게 “최근 커리큘럼에 포함된 ‘인권과 젠더(성평등)’ ‘인권과 난민’ 과목 개설을 반대하는 특정 종교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자유로운 학문 추구를 보호받아야 할 교정 안까지 울려퍼지며 연세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보편적 인권 가치와 평등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인권과 젠더’ ‘인권과 난민’ 강좌 개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혔다. 또 반 명예원장에게 “글로벌 리더로서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우리 재학생들이 매일 등교하는 교문 앞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집단의 시위가 반복되는 현 상황은 매우 우려된다”며 “이들의 반지성적 형태는 연세대의 건학이념을 모독함으로써 연세가 수호해 온 진리와 자유의 가치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수세력으로부터 각종 항의 전화·민원을 받는 학사행정직원들에게 “연세대가 교육공동체로서 ‘세계시민육성’이란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있도록 연세의 교육철학을 소신있게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재학생·시민들의 항의도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는 “우리의 인권은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며 학교의 입장 번복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해당 수업은 아직 4주차 강의밖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더러 약속했던 바와 달리 수강생의 의견을 수렴할 만한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라며 “학교의 입장 번복은 학교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의 외압에 의한 ‘정치적’ 결과인 것으로만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학교 쪽에 “보수 개신교 혐오세력과의 유착 의혹을 해명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39개 시민단체가 모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24일 “연세대가 이번 혐오선동에 동조하여 내린 결정은 반헌법, 반인권적인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해당 결정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 구글문서를 통해 진행 중인 학교 규탄 연서명 인원은 현재 2000여명을 넘어선 상태다.
앞서 연세대는 2017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교육·연구 중심 대학 지정 및 인권증진’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인권 관련 신규과정 개설 등 교육 협력’을 실시키로 한 바 있다. 연세대는 당시 “내년(2018년) 봄학기부터 ‘인권:생각에서 실천으로’라는 필수과목을 개설해 대학생들의 인권감수성 향상에 노력하는 한편 대학원생을 위한 온라인 인권교육과목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 역시 “연세대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기관과 상호 협력하며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