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 구매자 가장해보니
센터쪽 ‘영상 사고 싶다’ 쪽지 보내자
“100개당 1만5천원” 영상 보내와
IP추적 어려운 ‘다크웹’ 아니어도
랜덤채팅방서 너무 쉽게 거래돼
다크웹 없어도 쉽게 구하는 성착취 영상 “다크웹(아이피 주소 추적이 어려운 인터넷 공간)이요? 10대들에 대한 성착취 동영상은 거기까지 갈 것도 없어요. 기가 막힌 현실이죠.” 지난 30일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최근 다크웹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누리집 ‘웰컴투비디오’의 영상 유포에 수백명의 한국인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암호를 입력해야 접근할 수 있는 다크웹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선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이 랜덤채팅 앱 등에서 버젓이 공유된다. 특히 이런 랜덤채팅 앱은 아동·청소년의 영상이나 사진 등의 성착취가 이뤄지는 1차 피해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이를 재배포하는 2차 피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에게 온라인 공간에서 가해지는 ‘이미지 기반 성착취’는 그 자체로 엄연한 성범죄로 받아들여지는 게 추세다. 모니터 너머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나 성매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노출 영상을 보내라’고 해서 이를 소장하면 그 자체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 판례를 보면, 피해자인 여성 청소년에게 노출 영상을 찍게 해 전송받아 개인적으로 소지했던 남성이 2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직접 아동·청소년의 면전에서 촬영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만드는 것을 기획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촬영 행위를 하게 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며 아청법 위반이라고 봤다. _________
성범죄 이어지는데도…미온적인 경찰·방심위 게다가 랜덤채팅 앱에서의 성착취는 오프라인 성범죄로도 이어지기 쉬운데도 경찰과 방심위 등 관계 기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었다는 게 활동가들의 지적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 4월 문제의 ‘363개 중·고등학생 영상’을 경찰에 신고할 당시 경찰은 센터 쪽에 ‘영상 하나하나 왜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지’ 적어서 고발하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판매자가 ‘중딩·고딩들 영상’이라고 적은 제목을 캡처하고 영상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분별의 책임을 고발인에게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센터 쪽은 “육안으로 볼 때 발육 상태나 교복 등 너무나 명확하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들(63개)만 추려서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조진경 대표는 “사이버경찰청에 성매매 의심 업소 등을 신고해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게 다반사였다”며 “다크웹 사건이 안 터졌다면 경각심을 전혀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일선 경찰서의 경우에는 랜덤채팅 앱을 통한 영상 유포 외에도 접수된 사건 자체가 많기 때문에 신고나 고발이 들어온 것 위주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 권한을 가진 방심위도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다. 유해 콘텐츠 게시자들에 대한 계정 정지를 권고하는 게 현재로선 방심위가 랜덤채팅 앱 서비스 업체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제재라고 설명한다. 방심위 관계자는 “우리도 자체 모니터링을 하고는 있지만 불법 정보임이 확인이 돼야 제재 조처를 할 수 있는데, 게시물만 보고 일반 성인 간 만남을 제안하는 글인지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가 있는 글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2018년 8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 편파수사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 촬영물을 유포·방조한 웹하드는 처벌하지 않은 경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자에게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를 적용한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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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피해자인데 ‘범죄 가담자’로
성착취 영상의 피해자가 된 청소년들은 이중의 피해에 시달린다. 성매매나 성폭력 등 성적 착취에 따른 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대외 노출’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모욕감이 수반되지만 법은 이들을 ‘범죄 가담자’로 분류한다.
김두상 경상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합리적 규제와 피해아동 보호에 관한 연구’에 담긴 미국 쪽의 아동 성착취 영상 피해자 연구 자료(2018)를 보면, 피해자의 74%는 ‘부끄러움과 모욕감을 느끼며 본인 스스로 유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54%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자신이 기꺼이 참가해 촬영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찰이나 복지기관에 보고돼 도움을 받은 경우는 23%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국내에서 대부분의 10대 성착취 영상 피해자들은 ‘범죄 가담자’로 몰린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자발성’을 기준으로 성매매에 관여한 아동·청소년을 범죄의 피해자와 행위자로 분류한다. 비자발적 피해자를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자발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성매매에 가담한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가른다. 온라인 공간 범행도 이 분류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신수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랜덤채팅 앱에서의 영상 피해자도 자의로 노출한 것인지 폭행과 협박으로 강요당한 것인지로 환원되고 자발성이 다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아청법이 피해자의 진술을 가로막아 수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피해 사실을 말했다가 자신도 처벌받을까 봐 아이들이 진술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가 성인에게 있다는 걸 명확히 할 기준이 법에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의 아청법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단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되면 상처를 보듬긴 어렵다. 가해자처럼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고 ‘사회봉사’ 명령과 성폭력예방교육 등을 이수하게 된다.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처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기관이 있지만 주로 피해자로 인정된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지원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피해 청소년은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집 밖에도 나오지 못할 정도여서 지원이 절실하다. ‘왜 제가 성폭력 가해자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묻던 피해 청소년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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